오늘의 문장

세계의 지식인들, '박근혜 집권 우려' 성명 (2012년 12월 17일)

divicom 2012. 12. 17. 11:44

어젯밤 프레시안에 올라온 '세계 59개국 지식인 '박근혜 집권 우려' 서명 발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니 부끄럽고 착잡합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민주화투쟁을 해냈던 우리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프레시안: 


지난 5일 아시아 지식인 333명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유신독재를 기억하는 아시아 지식인 연대 성명"에 이어, 15일 세계 지식인 559명이 공통의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미국, 영국, 독일, 아일랜드,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콜롬비아 등 59개국의 원로 학자, 저명한 지식인들의 대거 참여하였다.


연대 성명은 '독재자 2세의 권력도전에 대한 범세계적 우려'를 담았다. 지난 1차 성명 때와 마찬가지로 박정희 통치와 유신독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이 민주주의의 미래에 매우 암울한 전조라고 밝히면서, 한국에서 경제위기와 정치불안을 이용하여 과거로 회귀하게 된다면 그것은 초국경적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성명은 유신독재의 2세가 권력을 승계했을 때 아시아와 세계 다른 나라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세계 지식인들의 공통적인 우려와 판단을 담은 것이다.

이번 서명에는 미국의 한국학 권위자 마틴 하트랜즈버그 교수, 세계적인 여성평화학자 영국의 신씨아 코번 교수, 대안적 세계화의 이론적 지도자인 프랑스의 수전 조지 박사, 유럽 직접민주주의 권위자 브루노 카우프만 박사, 미국 평화학 원로학자 채트윅 알거 교수, 유럽평화학회 창립자 운토 베사 교수, 아프리카와 제3세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진보 지식인인 남아공의 패트릭 본드 교수, 구소련의 반체제 인사이자 러시아의 진보적 지식인인 보리스 까갈리츠키 박사, 니카라과 전국시민사회연합 대표 이반 가르시아 마렌코, 일본 평화헌법 9조 수호운동 대표 이쿠로 안자이 교수, 세계적인 평화사학자 피터 반덴 덩엔 교수 등이 함께했다.

서명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마틴 하트랜즈버그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자신의 민주화투쟁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한국인들이 과거의 파괴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책으로 회귀하려는 세력을 거부하리라 희망한다. 만일 보수 세력이 한국사를 잘못되게 다시 쓰는 일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요구에 진정하게 상응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비극일 것이다."

영국의 신씨아 코번 교수는, 박근혜 후보가 단지 "가족관계로 독재자 박정희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정치철학으로 연관되어 있고, 그래서 당선된다면 이미 오래전에 종식되었다고 간주했던 불의와 억압, 폭력의 시기로 한국이 다시 되돌아갈 위험이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의 채트윅 알거 교수는 일본 지식인들의 우려와 비슷하게 지역적 불안정을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점점 외면당하고 있지만, 평화는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주주의를 경시하는 평화는 불가능하다. 당신들이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유엔개발프로그램과 유럽의회의 민주주의 고문을 지냈고 현재 현대직접민주주의세계포럼 의장인 브루노 카우프만 박사는 이렇게 세밀한 지적을 보내왔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민주화의 빛나는 귀감이며 지난 세기 커다란 진보를 이룩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것이 끝이 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민중의 힘은 매일 책임 있는 시민들에 의해서 재창조되어야 한다. 민중의 힘은 의회나 대통령에게 간단하게 위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출된 관료들이 일상의 정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한국에서와 같은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민중의 힘을 구성하는 세 개의 기둥에 기초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법치, 권력 위임, 그리고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모든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러한 원칙을 보장받을 때,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민주화 다음 단계로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를 인종주의 비판과 여성학의 틀에서 오랫동안 연구해 오고 실천적 개입을 해온 미국의 마르고 오카자와레이 교수는 박근혜 후보와 '여성'의 문제에 대해 특별히 의견을 보내왔다.
""여성주의"와 "여성의 정치 참여"의 취지가 한국 사람들에 거꾸로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국가를 이끌어나가는 데 여성을 필요로 하지만, 거기에는 진정하게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려는 여성들을 필요로 한다. 이번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 대통령 후보가 독재 치하의 비민주적 가치와 유산을 안고 국가를 이끌려고 하고 있다. 그(박근혜)가 과연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려고 할까?"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연구해 온 방글라데시의 인권법 전문가인 레자 라흐만 레닌은 이렇게 지적했다.
"과거 정치적 유산의 수혜자로 간주되고 있는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여러 부패 혐의에도 불구하고 주요 보수정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선거에 나서는 것은 우려스렵다. 그것은 또한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민주적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해왔던 노력과 성취를 무너뜨리고 해를 입히는 것이다. 이번 연대 성명의 취지는 단순히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 딸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한반도를 포함한 그 지역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을 잘 지키고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러한 우려가 단순히 특정 후보가 유신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권력도전에 과거와의 고리를 단호하게 끊지 않고 역사를 되돌리려 하는 실질적인 위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민교협의 김진석 교수는, 이번 세계 성명의 특징은 지난번 아시아 지식인 선언 이후에 유럽, 미주, 그리고 아프리카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또 자발적으로 서명에 대한 동참이 이어졌다는 데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또 이는 한국과 동북아 정치상황에 대한 우려, 특히 유신독재 장본인의 후계자가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가 되어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우려가 단순히 인접국가인 아시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얼마 전 우스꽝스럽게 번역 논란이 되었던 타임지 표지 제목 "독재자의 딸"에서도 볼 수 있듯이 2012년 한국 대선국면에 대한 관심은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적인 관심과 우려로 확산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시아와 세계의 지식인들이 뜻을 모아 두 차례에 걸쳐서 독재자 2세의 권력도전에 우려를 표명하는 연대성명을 낸 것은 전례가 별로 없는 특별한 사건이다. 이 깊은 관심사는 한국에서 유신독재의 추억이 권력화되는 일이 어떤 지역적 국제적 파장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에서 극우 정권의 등장이 미치는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도 맥락을 같이한다. 세계화되는 지구촌에서 이제 한 나라의 선거는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 평화 또는 그 퇴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치러질 수 없다는 점을 이번 성명은 보여준다.

기자회견에서 김진석 교수는 이렇게 성명의 의미를 갈무리했다. "세계의 지식인들은 당장 4일 후로 다가온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유권자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제 유권자들이 4일 후 대선에서 적극적인 선거 참여로 답할 때이다."

유신 독재를 기억하는 세계 지식인 연대 성명

아시아 민주주의의 귀감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선거가 12월에 열린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열리는 이번 대통령선거는 한국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하는 의미심장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의 대통령선거에서 집권보수당의 후보로,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여 잔혹한 철권통치를 했던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1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두 차례 민주세력의 정부를 경험하고 한 차례 보수정부를 경험한 다음, 한국의 보수권력은 박정희의 딸이자 박정권 당시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다. 박근혜 후보는 구 독재자의 치적을 앞세우며 독재자의 복권을 추구하면서 상당한 지지를 누리고 있다.

독재자 가문과 명문 가문의 2세들이 쉽게 유력한 정치지도자가 되는 많은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 이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87년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바라는 강력한 민의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문과 재력과 영향력에 힘입어 쉽게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2세승계의 관행을 허용하지 않아왔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의 자녀들까지 사업이나 정치활동에서 매우 엄격한 법적 여론적 검증을 받고 처벌까지 받았을 정도이다.

박정희 통치와 유신독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아시아의 지식인들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이 민주주의의 미래에 매우 암울한 전조라고 생각하며 우려하고 있다. 박근혜 측근들이 미화하는 것과 달리, 박정희 독재시기는 매우 불안한 정치적 위기의 연속이었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일본제국주의 시대를 연상시키는 전체주의적 통제와 희생을 강요하였다.

60-70년대 한국은 비극적인 시대였다. 아시아와 세계의 지식인들은, 전 일본군 장교 박정희가 만든 체제에서 무고한 시민들과 야당 정치인에게 가해지는 납치, 감금, 고문, 협박, 세뇌 등 거대한 폭력을 목격했고, 한국 사회가 부패와 밀실정치로 무너져가고 국가 전체가 거대한 병영으로 변하는 과정을 아직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이 기억은 충격이었고 경종이었고 함께하는 행동과 연대성의 계기였다. 다행히 우리는 그후 한국 시민들이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군부독재 세력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아래로부터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각 현장에서 민주화를 위해 함께 노력했다. 이는 필리핀, 타이완, 인도네시아 등의 민주화와 결합하여 아시아에서 거대한 민주주의 영감과 파도를 이루어내었다.

한국에서 구 독재자의 2세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당선 가능선에 있다는 것은 다시 보수적인 정부가 들어선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아시아에서의 민주화는 그 훌륭한 진보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과두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매우 불완전한 민주화였다. 한국에서 구 독재자의 2세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이것은 아래로부터의 민주화가 이룩했던 것을 모두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박정희시대와 그 전통을 잇는 과두독점 세력들의 화려한 부활을 의미한다. 아시아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가 국경을 넘는 파급효과를 가졌듯이, 이제 신•구 과두세력의 부활은 국경을 넘는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제위기와 정치불안과 결합하여 과거로 회귀하는 파급력을 만들어낼 우려도 있다.

우리는 과거 군부독재가 그 억압적인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안보위협을 과장하여 군과 군사주의를 비대화하고, 국내 비판 세력의 비판을 위협으로 과장하여 탈법적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를 명분으로 부와 권력과 언론을 독점하여 평민들의 생활을 파탄에 빠지게 한 것을 기억한다. 이런 면에서 독재의 추억을 간직한 과두세력의 부활은 21세기 한국과 아시아에 매우 불길한 전조를 드리우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시민들 다수가 독재의 추억을 회귀시키는 흐름을 저지할 것이라 믿지만, 독재/과두 가문의 2세정치가 불가능했던 한국에서 새롭게 유신독재의 계승자가 세력화되는 것에 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유신독재를 기억하는 우리에게 이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우리의 이러한 관심은 한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생길 때 함께 우려를 표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실질적으로 정의를 가져오는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그리고 국경을 넘어 민의 행복과 권리 증대를 위해 서로서로 힘을 모으는 새로운 아시아를 만들어가는 취지로, 우리 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유신의 추억이 부활하는 것을 다같이 막아내자고 호소하면서 위와 같이 뜻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