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슬픔을 이기는 법 (2009년 3월 6일)

divicom 2009. 12. 29. 18:27

최근 인터넷 포털 ‘다음’에선 43세 아버지의 마라톤 출전 소식이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학창시절 이후론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는 장형섭씨가 2월 28일 하남시 전국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건 희귀질환으로 죽어가는 아들과 장애인 가족들을 위해서입니다. 30킬로미터 부문에 출전하여 4시간 45분 2초의 기록으로 완주했으니 대회 참가 전의 바람대로 “장애의 멍에 속에 숨어 지내는 부끄러운 아빠”를 벗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장씨의 아들 석범이는 아홉 살입니다. 출산 중 탯줄이 끊겨 두 번의 대수술을 받고 4개월이 지나서야 부모의 품에 안겼으나 하루 24시간 간병을 받아야 하는 뇌병변 장애 1급입니다. 간병을 위해 일도 그만둔 장씨는 아내와 교대로 아들을 돌보느라 허리가 휘고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지만 그런 고통보다 사람들의 편견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편견과 맞서기 위해 마라톤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얘기를 읽으니 그 결심의 뿌리가 된 깊은 슬픔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로 할리우드의 톱스타 반열에 오른 존 트라볼타는 최근 16세의 나이로 사망한 아들을 기리기 위해 ‘제트 트라볼타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재단은 시력, 청력, 운동, 의사소통, 행동 발달과 관련된 장애가 있거나 의학적, 환경적 문제, 혹은 보건과 교육 문제로 고생하는 어린이들을 도울 거라고 합니다. 재단은 또한 대중을 상대로 한 환경교육에 보조금을 제공하고, 자연재해나 인위적 재해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구호하며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제트는 어려서 희귀한 심장질환인 가와사키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는데 지난 1월 2일 휴가 중에 별장의 욕실에서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존 트라볼타의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글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지만 절제된 언어도 깊은 슬픔을 감추진 못합니다. “제트는 모든 부모가 갖고 싶어 할 훌륭한 아들이었고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밝은 빛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아 가슴이 아프지만 그 시간을 평생토록 소중히 간직할 겁니다.” 제트 트라볼타 재단의 설립은 트라볼타 부부의 슬픔이 세상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빛이 되리라는 걸 말해줍니다.

지난 달 중순 서울 홍익대 앞의 한 노래방에서는 54세의 여성 김석옥씨가 76시간 7분 동안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 ‘노래 부르기 마라톤 (longest singing marathon by an individual)’ 부문 신기록을 달성, 기네스북 등재를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총 1,283곡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휴식이라곤 노래와 노래 사이에 주어지는 30초와 시간당 5분이 전부여서, 식사 대신 보온병에 담아온 꿀물과 귤, 바나나 등으로 요기하며 허기와 졸음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김씨는 2년 전에도 60시간 동안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 이 분야 한국 기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뇌종양과 싸우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도전했었고 이번엔 9개월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나섰다고 합니다.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에는 ‘이진아도서관’이 있습니다. 2002년 6월 미국 보스턴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딸 진아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 이상철씨가 수십억 원을 기부해 지은 도서관은 “별이 된 딸의 이름이 영원히 남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2005년 9월 진아의 25번째 생일에 문을 열었고, 2007년 11월엔 서대문구 모래내길에 ‘가재울 어린이도서관’이라는 분관도 열었습니다. 도서관을 개관하던 날 이씨는 “아빠, 엄마가 흔적 없이 사라진 뒤에도 진아는 도서관과 함께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을 생각하니 아빠 노릇을 한 것 같아 조금 위안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씨에게 위안을 주었던 이진아도서관은 이제 무수한 사람들에게 빛과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와 국립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그 전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으며 각막 기증 신청자도 3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슬픔에 잠긴 이의 뜨거운 눈물은 일상의 얼음장을 녹여 그 아래 숨어있던 그이의 위대함을 드러나게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장형섭씨를 괴롭힌 편견과 같은 동료인간들의 우행(愚行)이 우리를 절망시킬 때, 아니다, 너와 그들 속에 위대함이 있다고 일깨워주는 것이지요. 김 추기경의 사목 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의 ‘너희’는 바로 슬픔을 딛고 위대함에 이른, 그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