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교통방송 '즐거운 산책' 시간에는 송수권 시인의 시 '우리말'을 읽어드렸습니다.
1985년 12월에 출판된 시집 ‘다시 핀 꽃에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시간관계상 다
읽어드리지 못했으나 여기에는 전문을 옮겨둡니다.
우리말
감자와 군고구마 같은 낱말을
입안에서 요리조리 굴려보면
아, 구수한 흙냄새
초가집 감나무 고추잠자리.....
어쩌면 저마다의 모습에 꼭두 알맞는 이름들일까요
나무, 나무, 천천히 읽어보면 묵직하고 커다란 느낌
친구란 낱말은 어떨까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조금씩 밝아오는 얼굴
풀잎, 풀잎 하고 부르니까
내 몸에선 정말 온통 풀냄새가 납니다
또 잠, 잠 하고 부르니까
정말 잠이 옵니다
망아지 토끼 참새 까치 하고 부르니까
깡총거리며 잘도 뛰는 우리말
강아지 하고 부르니까
목을 흔들며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나는 우리말
오리, 하고 부르니까 금방 발이 묶여 뒤뚱거리는 우리말
미루나무에서 까작까작 아침 까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닳고 닳은 문돌쩌귀 우리네 문돌쩌귀
수톨쩌귀 암톨쩌귀 맞물고 돌아 매번 뒤틀리기만 하는 사랑
기다림 끝에 환히 밝아오는 정말,
사랑, 이란 이 낱말은 어떨까요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그 문고리에 목을 매고 싶어지는
치사한 정 더러운 정
금방 눈물이 쏟아집니다요
그러면 눈물, 이 말은 어떨까요
1%의 염분과 99%의 물...... 물, 물, 물
금방 범람하는 홍수
마침내는 허우적거리다 내 목은 물에 잠깁니다
얼쑤 얼쑤 도깨비탈을 쓴 까만 뒤통수만 남은 춤,
매품팔이로 흥부전에서 반짝 빛을 냈다 꺼지는 우리말
밥, 밥, 밥, 바압, 바압, 바압, 바아압, 바아압, 바아아...ㅂ
밥, 밥, 밥, 바압, 바압, 바압, 바아압, 바아압, 바아아...ㅂ
GI 시절
어디서 누룽지 타는 냄새
솥뚜껑 소리.....
난리다 하고 소리치니까
강화도 남한산성 의주가 고삐풀린 말처럼 뛰고
송장이다 송장 하고 외치니까 뒤집혀 떠오르는 발목들
토끼 오리 망아지 망아지 토끼 오리 망아지 아니다, 아니다,
백성? 시민? 민중? 공중? 대중? 아니다, 아니다
그 요란한 함성에 묻히면서 나는 무엇인 줄도 모르면서
봉화불을 들고 뒤죽박죽이 되어
제기럴꺼 얼럴러 곶감이다 곶감 하니까
문 밖에서 호랑이도 놀라 내빼는 우리말
시냇물, 그 연약한 속삭임, 산골물, 그 끊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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