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에 찾아가 `한미 FTA 선(先)발효-후(後)협상'을 제안했는데 민주당이 이를 거부하자 한나라당에서는 ‘다수결’로 FTA를 비준시키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어제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홍준표 대표는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며 소속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끝장토론을 촉구하여, 의총에 참석한 의원 수가 전체 169명 중 140명에 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폐기 또는 유보를 위해 즉각적인 재협상에 착수한다는 양국간 서면 합의를 요구했는데, 이것은 민주당이 대단히 특별한 요구를 한 게 아니고 당연한 요구를 한 것입니다.
외교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선발효 후협상’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양국이 맺은 협정을 각 당사국이 비준한 다음 다시 협상하다니요? 한쪽은 불만이 없는데 다른 쪽만 불만이 있다고 협정을 다시 쓸 수는 없습니다. 물론 테이블에 마주 앉아 다시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이 대통령이 이 제안을 내놓은 후 미국 관료들이 한 얘기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협상은 할 수 있지만 협정의 내용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외교에는 여당, 야당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와 협정을 맺을 때는 여야 전체를 아우르는 노력으로 국익의 최대화를 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 없이 협정을 맺고 나서, 비준한 후에 다시 협상하자고 하면서, 그 말을 듣지 않으면 힘으로 밀어 붙이겠다니, 한나라당은 지금이 2011년 11월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 걸까요? 아니면 한 30년 전으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요? 아무래도 한나라당의 앞날이 위태롭습니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패배가 한나라당 쇄신을 위한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것 같습니다.
대미 외교 전문가로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한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10월 20일 자신의 웹사이트에 한미FTA 문제를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정리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총회에 모여 목청을 높이는 대신 각자 자기 방에서 그 글을 읽으며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아래에 송 의원의 글을 옮겨둡니다. 원문은 http://www.mssong.or.kr 에 있습니다. '주'는 옮겨두지 않았으니 원문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ㆍ미 FTA 비준의 길은? (2011.10.20(木), 송민순)
2007년 6월 협정이 체결된 지 4년 반 만에 미 의회의 한.미FTA 비준이 끝났다. 이제 공은 우리 국회로 넘어왔다.
우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정부가 무슨 이유를 대더라도, 12월 재협상으로 인해 팽팽히 맞추어진 양국의 이익균형이 일방적으로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야당은 그간 '10(재협상)+2(국내보완대책)'의 재재협상론을 주장해왔다. 야당의 주장 역시 국익 극대화를 위해서는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야당의 주장을 대미협상에 지렛대로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주지 못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 발생 이후부터 미국의 자동차부문 재협상 요구가 불가피해 보였다. 이에 대한 카드준비를 미리 해놓자는 주장을 거듭 개진했다. 한.미 FTA가 양국의 균형된 이익을 확보할뿐만 아니라 충실한 국내보완대책을 갖춘 후 적절한 과정을 통해 발효되길 희망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내 상황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주장(협정수정 불가)을 고집하다가 결국 우리측만 희생을 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야당의 주장, 국회의 요구를 외면한 채, 우리 정부 혼자 미 행정부와 의회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는 막무가내로 이런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 의회의 비준과정은 끝났다. 현실적으로 미국과 다시 주고받는 재재협상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제 우리가 마련할 수 있고, 보다 철저히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국내적 이익 균형장치다. 이는 곧 FTA 체결로 피해를 보는 국민들을 위한 보완대책이다. 보완대책을 보다 강화할 수 있다면 비록 개악된 상태이지만 국가미래를 위한 제반 측면을 감안할 때 한.미 FTA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 의회에서 여.야는 표결을 통해 한.미 FTA를 처리하였다. 우리 국회도 마땅히 그러함이 옳다. 그러나 미 의회에서의 표결 이전에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은 수많은 정치협상을 통해 국내이익균형을 조정한 후 그러한 결과를 도출하였다. 그리고 FTA 이행법안 처리에서도 국내보완대책인 무역조정 지원법(TAA)을 패키지로 처리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국회는 과연 어떻게 하고 있는가.
정부와 여당은 「여야정협의체」가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협의체에서 도출된 결과는 무엇인가. 필요한 의견접근을 이뤘고 국민들에게 내놓을만큼 된 것인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비준강행은 결국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2008년 국회의 모습을 반복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국회의 존재이유와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작동여부에 회의를 느낄 것이다.
따라서 미 의회에서와 같이 힘들지만 서로 타협하는 과정을 거쳐 표결에 부쳐야 한다. 그런 정상적 입법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이 야당의 합리적인 주장은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반대를 위해 반대하는 일부 극단적 주장에 빌미를 주지 않을 수 있다. 야당 역시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재재협상론을 주장하기보다는 구체적 국내보완대책을 중심으로 한 대정부 요구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보완대책의 주요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중소기업 및 근로자 지원을 위한 무역조정지원 제도의 개선이다. 생산액 또는 매출액이 FTA 발효 이전보다 20%이상 감소되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현행 기준에서 미국 수준인 5% 이상으로 완화하는 것이다.1) 또한 최소한 전년도 관세의 1% 이상 규모의 「무역조정지원기금」(5년간 최소 총 7,410억원 전망)을 신설해 무역조정지원 기업의 경영안정 등을 위한 융자와 무역조정지원 근로자의 전직, 재취업 등 지원과 생활안정에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제도와 예산이 뒷받침되는 농업부문 지원방안이다. 농어업용 면세유 확대 및 일몰기한 연장과 장기임차기간보장, 피해보전직불제 등 제도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실질적 예산도 마련되어야 한다. 말뿐인 지원 대책이 되지 않기 위해 현재 국회에 제출된 2012년 예산안을 보완대책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한.미 FTA가 국내이행과정에서 다른 법률과의 충돌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FTA와 국내법간 조화장치가 필요하다. 미국도 한.미 FTA 이행법안에 자국법령과 충돌할 경우 자국법이 우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취지는 FTA와 국내법이 충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므로, 실제 큰 의미는 없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버드 수정법(Byrd Amendment) 사례2) 등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 수정법이 GATT 협정에 위반하는 것으로 WTO에서 폐지결정을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며 4년이 넘도록 이행을 미뤄왔던 것이다.
형식면에서 미국의 이행법안을 보면 「미국법→한.미 FTA→한국법」 순서의 위계가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도 한.미 FTA와 국내법이 충돌할 경우 국내법이 우선토록하는 대칭적 법률을 제정하고, 다만 분쟁 발생시 우리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국내법을 한.미 FTA와 최대한 조화시키는 절차가 필요하다.3)
통상협정은 이로 인해 수혜계층과 피해계층으로 나눠지므로, 극심한 논쟁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통상협상은 국가간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국내의 협상과정이다. 국민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내협상과정을 생략하는 간소화시키는 쾌도난마식 결단이 아니라 피해보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한.미 FTA의 국회비준이 원만히 처리될 것인가, 회의장 점거와 몸싸움 등 구태가 또 다시 반복될 것인가. 정부는 지혜로운 보완대책 수립을 통해 원만한 국회처리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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