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북경에서 온 편지 (2008년 5월 2일)

divicom 2009. 11. 29. 10:45

처음 <북경에서 온 편지>를 읽은 건 대학 시절입니다. 그때 대학생들은 지금 학생들보다 키가 작았지만 지적 욕구만은 뒤지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오래 산 미국 작가 펄 S. 벅의 원저는 <Letter from Peking.> 북경을 “Peking”이라 한 건 그 책이 1957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1980년대부터 공식적으로 “Peking”대신 “Beijing”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세월 잊고 있던 그 소설을 상기시킨 건 북경에서 온 또 하나의 편지입니다. 지난 일요일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서울 한복판에 일으킨 소요 사태 후 날아든 것입니다. 일부를 옮겨 봅니다.

“서울의 성화 봉송 과정에서 일어난 중국 시위대의 폭력행위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정부는 유감이니 위로니 하는 말을 할 뿐 진정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저를 비롯해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화 봉송 이전부터 점차 가시화되어 온 과열된 민족주의가 마침내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불미스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맹목적 애국주의에 대해 우려해왔습니다.

국력이 신장되면서 중국인으로서의 긍지를 느끼게 된 건 좋지만 획일적인 교육에 젖어 전체주의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게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티베트 사태로 촉발된 외국의 비난과 오해 때문에 화가 나있었다는 걸 감안해도 말입니다. 게다가 정부는 그런 풍조를 암암리에 지지, 이용해왔습니다. 저는, 성화가 지나가는 외국 도시의 중국대사관이 유학생들을 성화 봉송 행사에 동원했다는 일본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이제 막 실질적인 강대국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중국이 국수주의적으로 흐르게 되면 중국은 물론 세계의 평화로운 공존과 발전이 저해될 것이라는 게 불 보듯 뻔합니다.

우리는 정보의 교류와 자유 토론을 진작시켜 민주주의의 창달에 기여하는 인터넷의 발달과, 중국의 성공적 경제 성장을 만방에 알릴 베이징 올림픽이 중국인의 의식을 국제화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오히려 민족주의적 아만(我慢)을 결집시키는 데 유용하게 쓰이고, 올림픽 성화 봉송을 둘러싼 행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백일하에 드러내니 수치스럽습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이 하루 빨리 이성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로선 이번 사태를 일으킨 젊은이들이 부끄러운 만큼, 그들의 행위에 대해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우리 정부가 부끄럽습니다. ‘사태의 본질은 성화 릴레이를 방해하려던 티베트 분리주의자들의 행동을 저지하려고 나선 선량한 중국 유학생들의 정의의 행동이었으며, 그들의 본의는 좋은 것이었으나 과격해져서 빚어진 것’이라는 외교부 대변인의 말은 그야말로 뻔뻔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는 결코 ‘이기(理氣)의 분노’ 가 빚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우리 기성세대가 ‘혈기의 성냄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이기의 성냄은 없어서는 안 된다’는 12세기 유학자 주시(朱子)의 가르침을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불찰이 크다고 봅니다...

시작은 지나친 애국심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의 철없는 행동이었을지 모르나 이제 이 사건은 외교 문제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건 한국 정부의 대응입니다. 경찰과 기자를 폭행한 시위자들을 추방하지 않고, 서울에 주재하는 중국대사를 나가라고 하거나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국대사를 소환하지 않는 것도 놀랍습니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얘기가 들리지 않는 것도 놀랍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이 톈안먼 광장에서 이번 사건과 유사한 과격시위를 벌였다면 중국 당국이 어떻게 대응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중국이 국토와 인구를 빌미로 대국임을 내세우는 소국이라면 한국은 작지만 큰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편지를 보낸 이가 진심으로 “한국은 작지만 큰 나라”라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유독 그 표현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어제 조선일보엔 “‘중국식’ 정의(正義)의 수준과 한국의 21세기 국가전략”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습니다. “중국인들이 미국 워싱턴이나 일본 도쿄, 영국 런던에서 집단 행패를 벌이고도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무엇이 중국과 중국인들이 대한민국과 한국민을 이렇게까지 함부로 대하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은 이런 수준의 중국과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21세기 국가전략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예의입니다. 한쪽이 예의를 지키지 않을 때 무례를 당한 쪽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주면 상대방의 무례를 부추기게 됩니다. 무례를 저지르는 쪽이 “내가 이렇게 해도 너는 꼼짝 못할걸” 하고 생각하는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정부는 양국 교역, 인적 산업적 교류, 국제 사회에서 중국이 갖고 있는 영향력 등을 고려하여 중국의 무례를 문제 삼지 않거나 문제 삼지 못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북경에서 온 편지>를 처음 접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건 옳은 말과 옳은 행동을 하는 사람과 국가가 존경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키가 큰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땅이 크고 힘 있는 나라라 해도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이익을 잣대로 처신한다면 언젠가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밟혀도 꿈틀하지 않는 나라, 21세기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