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이희호 선생 (2011년 8월 20일)

divicom 2011. 8. 20. 07:29

저는 '동행'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 특히 많은 사람과 만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함께 가는 것'은 좋아합니다. 나란히 걷는 것도 좋지만 각기 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길을 걸어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7년 3월 자유칼럼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며 '김흥숙 동행'이라는 문패를 단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세상은 악화일로에 있는 듯해도 주변엔 훌륭한 동행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희호 선생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이 선생이 2008년에 <동행>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내셨을 때는 이분도 '동행'이라는 말을 좋아하시는구나 혼자 기뻤습니다. 나중에 잠시 뵐 기회가 있어 제가 보던 <동행>을 들고 가 선생님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이 나라가 가졌던 가장 지적(知的)인 대통령 부인, 그러나 그분이 청와대에 계실 때 우리 사회는 그분의 진가를 알아볼 수준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18일)은 그분의 남편인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2주기였습니다. 내일과 28일 오전 7시 10분에 KBS1TV의 'TV 자서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희호 선생의 '동행'을 다룬다고 합니다. 이 책을 보아야할 사람들은 젊은이들인데 일요일 아침 7시 10분에 방영한다니 과연 몇 명의 젊은이가 볼 수 있을지 안타깝습니다. 아래에 지난 주 한국일보 서화숙 선임기자가 2주기를 앞두고 이희호 선생을 인터뷰한 기사를 일부 옮겨둡니다. 한국일보 웹사이트에는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_ 살아계실 때 이렇게 해드릴 걸, 그런 것은 없는지요?

"그런 생각이야 있지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는 좀 무뚝뚝한 편이거든요. 애교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살아계실 때 좀더 애교있게 대할 걸, 그런 생각이 들어요."

_ 입관식 때 비서관이 대독한 마지막 편지에서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도 많았습니다'라고 한 것이 그건가요? 특별한 잘못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요?

"모르지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특별한 잘못은 생각이 안나요."

_ 보통 여자들은 화를 많이 냈다거나 바가지를 긁었다거나 그런 게 후회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바가지 긁지 않아요. 내가 1968년도에 한 달 동안 미국을 갔다 오니까 아주 쪼끄만 강아지를 똘똘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데려다 놓았더라고요. 굉장히 아끼셨어요. 그런데 강아지가 어찌나 작은지 요런 틈으로도 빠져나가요. 하루는 나 혼자 집에 있는데 강아지가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내가 국회로 전화를 걸었어요. 똘똘이가 보이지를 않는다고. 그랬더니 쏜살같이 들어오셨어요. 내가 (강아지를) 싫어하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_ 그러니까 대통령께서는 그게 화낸 게 다이고, 여사님은 그런 화도 내본 적도 없으시다고요?

"나는 별로 화를 내지 않습니다. 아주 어려서 형제들이나 여동생하고 티격태격 다투기는 했지만 커서는 누구하고 다툰 일이 없어요."

_ 화가 올라오질 않아요?


"화날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주위에서 다 웃음)

_ 그렇게 대통령한테 어려운 일이 많이 닥치고 억울한 일도 많았는데 화날 일이 아니에요?

"그거야 내가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야지 누구한테 화를 내요."

_ 가령 납치나 사형선고를 당하면 정부 사람을 만나서 화를 낼 만도 한데요.


"정부 사람을 내가 스스로 만나는 일은 없고 법절차를 안 지킨다고 시정해달라고 서류 만들어서 제출하러 가긴 해도 그걸로 화를 내지는 않아요."(허화평씨가 연락을 해와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는 자서전 기록을 봐도 이희호 여사는 전두환 대통령이 대화 도중 다리를 긁더라며 털털하다고 인품을 표현했을 정도이다)

_ 두 분은 늘 화해와 용서를 말씀하시는데, 역사적으로는 나쁜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보다 올바른 길이 아닌지요?

"역사는 후대에서 평가하는 거지요. 남편은 늘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용서하되 잘못된 일을 철저히 그 진상을 밝힌다' '사람은 용서하되 잘못된 제도는 바꾼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했어요."

_ 89년 생애를 돌아보시면 가장 슬펐을 때는 역시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을 때인가요?


"그렇지요. 그리고 납치 당해서 어디 계신지 전혀 몰랐을 때, 일본에서 전화만 친구가 걸어주고, 행방이 불명하다고."

_ 돌아가시는 순간, 가장 처음에 든 생각은 어떤 것이었어요?


"나도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눈시울이 붉어진다)


_ 대통령께서 살아계신다면 현재의 한국사회를 보고 무엇을 가장 안타깝게 여기실까요? 그리고 무엇을 조언하셨을까요?

"살아계셨다면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회 곳곳에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가장 안타깝게 여기셨을 겁니다. 그리고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그 뒤 남북간에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개성공단이 만들어지고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이산가족들이 만나고, 그래서 남북관계는 반석 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권이 바뀐 후에 모든 게 중단되어 그걸 매우 안타까워했을 겁니다. 아마 사회 전반에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하셨겠지요."

_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한테 한 말씀 하신다면.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그 길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_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도 밝히셨는데 진전은 있나요?


"작년에 6ㆍ15남북공동선언 10주년 때 북한에서 초청 의사를 밝혔어요.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 북한에서 특사조문단을 보낸 것에 대해 사의도 표시하고 북한 어린이를 위해 손뜨개한 모자 1만개도 전달하고 싶은데, 남북관계가 워낙 좋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_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 5ㆍ18은 유언비어를 믿은 광주시민들이 무기고를 탈취해서 이를 진압하기 위해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는데요.


"5ㆍ18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주시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국내 어느 신문도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고 이제는 오래된 일이라 젊은이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게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당시 상점이 다 열려있어도 물건 하나를 가져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민의식이 높았고 요구한 것은 민주주의 회복뿐이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그들을 폭도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안될 일입니다."

_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우익을 가장한 독재세력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50년 동안 피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매우 위태로워 걱정이다'라고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부 비판을 할 수 없다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만들고 지켜온 국민들의 것입니다. 광주나 부산, 마산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일어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국민들이 잘 지켜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_ 차기 대선에서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어떤 특정한 사람보다는 민주주의를 철저히 지키고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