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어떤 결혼식 (2011년 9월 25일)

divicom 2011. 9. 25. 12:08

나이가 오십을 넘어가면 주말엔 결혼식 손님 노릇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결혼식 풍경은 결혼을 주최하는 사람들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정성스런 예식으로 손님들의 사유를 부추기는 결혼식이 있는가 하면, 손님보다는 손님이 들고 오는 봉투에 관심을 두는 듯한 결혼식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자신들이 벌이는 어떤 나쁜 행사에 손님을 공범으로 만드는 듯한 결혼식도 있습니다.  어제 참석한 결혼식은 근래에 드물게 아름다웠습니다. 청첩을 받을 때부터 기분이 좋더니 결혼식도 청첩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청첩엔 우선 서정주의 글이 인용되어 있고 그 아래에 "어디든 함께 가고픈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동행의 시작, 가까이에서 축복해 주시면 더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어디든 함께 가고픈'이라는 말에 끌려 오유빈과 강동구, 두 젊은이의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들이 청첩에 인용한 글은 이렇습니다.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볼 생각이다."

 

 

어제의 결혼식이 특히 마음에 든 것은 신랑 신부를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통상 결혼식에서는 '신랑 000군은 명문 00대학교를 나와 00고시를 패스하고...' 하는 식으로 하는데 어제의 결혼식에서는 그 '00'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신랑과 신부가 서로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와 직접 읽었는데, 그 단어와 단어들 사이를 채우고 있는 진심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오종희 + 목계선의 딸 유빈과 강종성 + 홍해숙의 아들 동구,

두 젊은이의 앞날이 늘 어제와 같기를 축원하며,

다른 이들의 예식도 그들의 혼례와 같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