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불륜 중인 'ㄱ'씨에게 (2007년 9월 14일)

divicom 2009. 11. 19. 11:31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 양균씨와 전 동국대 교수 신 정아씨가 주고 받은 “낯 뜨거운” 이메일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사의 시초는 신씨가 학력을 위조하여 광주 비엔날레 예술 총감독과 동국대 교수가 되었는가, 그 과정에서 변씨가 그녀를 위해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는가 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가 관심의 초점이 된 듯 합니다. 사라진 이메일을 추적해낸 것은 그러려니 해도 수사와 상관 없는 사적인 부분을 들춰내어 언론에 공개한 검찰이나 그것을 좋아라 대서특필하는 언론의 선정주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21세기인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지금 한창 불륜중인 “ㄱ”씨, 당신도 밤잠을 설치며 뉴스를 보고 있겠지요. 이미 애인과 만나는 횟수를 줄였을 수도 있고 애인과의 관계를 청산해야겠다고 결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륜은 매스컴이 보도를 하든 않든 늘 위험한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한참 어린 애인과 사랑에 빠져 캠퍼스 커플처럼 붙어 다닌다 해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당신이 빠져든 상태가 진정 사랑일까 궁금하긴 합니다. 부하 직원들이 여럿 있는 사무실에서나 호젓하게 들어 앉은 화장실에서나 당신의 머리엔 오직 한 사람뿐이라거나, 평소의 당신답지 않게 웃음이 많아지고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해서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모든 지속 가능한 사랑은 그리움과 설렘만 가지고는 부족하니까요.

자라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고 키우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아니요, 당신의 권력으로 애인을 출세시켰거나 능력 있는 애인 덕에 여러 분야 사람들과 인맥을 쌓게 된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과 애인이 사랑하게 된 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느냐는 얘기입니다. 애인을 만난 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면 당신과 애인은 진정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애인을 만난 후 사랑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온 세상을 미워하게 되었다면, 당신은 사랑대신 지속 불가능한 열정 (劣情 혹은 熱情)의 포로가 되어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좋아요, 당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요.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애인 또한 같은 마음일까요? 요즘 머리 좋은 사람들은 우정과 사랑, 종교까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는데 혹 애인도 당신을, 당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부자는 모든 면에서 유리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구할 때만은 불리하답니다. 그이가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는지 알고 싶으면 그이가 당신에게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십시오. 손을 잡자고 하는지 입맞춤을 하자고 하는지, 당신이 가진 정치, 경제, 사회적 능력을 자신을 위해 써달라고 하는지.

당신과 애인이 똑같이 사랑 중이라 해도 세상은 그 사랑을 불륜이라부릅니다. 파바로티처럼 인류에 기여한 사람조차 조강지처를 버리고 35세 연하와 결혼했다고 대중의 비난을 받습니다. 대중은 급하게 재판하고 더디게 용서합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당신의 사랑이 불륜으로 재판 받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당신들의 사랑에 대해 함구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당신들의 사랑 또한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어리고 귀여운 애인과의 사랑,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침묵하십시오. 사랑에 대해 침묵하는 건 사랑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 됩니다.

사랑에 대한 예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배우자와 가족에 대한 예의입니다. 당신이 미숙한 청년을 넘어 매력적인 중년이 될 수 있게 도와온 당신의 동반자들에게 배신감과 허무감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배우자 몰래 사랑하느라 잠을 이룰 수 없다거나 양심에 가책이 되어 견딜 수 없다고 해도 “여보… 나, 할 말이 있어… 사실은…”으로 시작하는 고백을 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순간부터 당신의 무고한 배우자는 배신감과 질투로 밤을 새우게 될 테니까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사랑의 밀어들도 인터넷을 타고 편리하게 흘러 다니지만 불륜중인 당신은 쉬운 길을 피해야 합니다. 언제든 발각되어 곤경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불륜은 이래서 어렵고 수고로운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빠져드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불륜 상태를 유지하다 보면 위염이나 위암에 걸리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마음을 졸이며 배우자와 연인 사이를 종종 걸음 치다 보면 밤낮 없이 위산이 분비되겠지요. 병에 걸리거든 사랑 값을 치르는구나 하고 조용히 견뎌내십시오. 불륜 한번 경험해보지 못하고도 고약한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참, 당신의 투병을 돕느라 동분서주할 가족을 위해 보험 하나쯤은 꼭 들어두셨으면 합니다. 부디 사랑 안에서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