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얼굴에서 길 찾기 (2007년 8월 16일)

divicom 2009. 11. 17. 00:17

바깥 세상의 사건들도 그렇지만 집 안팎의 일들도 물고기떼처럼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정신 없이 시달리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은 날 하루를 베어내어 천안으로 갑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안시 신부동의 아라리오 갤러리로 가는 겁니다.

이름 탓일까요, 아라리오를 생각하면 분주한 삶 너머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언덕이 떠오르고 그 언덕 너머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서울의 아라리오 갤러리를 두고 천안의 아라리오를 찾아가는 건 “천안 삼거리 흥~”하는 민요 가락이 시사하는 자유 때문일까요, “본점”에 집착하는 천민 자본주의적 습성 때문일까요?

천안의 거리도 서울 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천안 사람들의 얼굴도 서울 사람들의 얼굴과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보던 이름의 가게들이 천안의 거리 양편에 늘어서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대기업과 프랜차이즈에 의한 시장 석권이 가시화 된다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어디를 보나 다 그 이름에 그 얼굴들입니다.

마침내 아라리오 갤러리가 나타납니다. 연건평 1,500여 평에 갤러리 면적만도 900여 평. 우리나라 최대의 사설 갤러리라는 아라리오는 독특한 외관의 건물과 옥외에 설치된 조각들로 도시 안의 소도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갤러리에선 마침 강 형구씨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8월 19일까지라니 하마터면 놓칠 뻔 했습니다.

강 형구씨는 얼굴에 천착해온 작가입니다. 두어 해 전 그이가 그린 유명인들의 캐리커처를 보고 웃으며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빗물에 살짝 젖은 계단을 올라 전시장에 들어서자 푸른 빛 도는 화면 속의 고흐가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그러고 보니 전시회의 제목이 “The Gaze (응시)” 입니다.

이번 초상들은 전에 보았던 그림들과는 너무도 달라 이 작가가 그때 나를 웃게 한 그 작가인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웃음을 일으키긴커녕 가슴 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비창悲愴을 대번에 길어 올려 눈가를 젖게 합니다. 259.1 cm x 193.9 cm 화면에 담긴 피카소와 눈싸움을 하다 보니 얼굴은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꼬리에서 코를 향해 흘러내리는 눈물길을 보며 거장의 슬픔을 생각합니다. 고흐의 얼굴엔 고통이 가득하지만 그의 눈 아래 길들이 모두 옆으로 흐르는 걸 보니 눈물을 철 철 흘리는 일 따윈 없었던가 봅니다. 로댕의 눈물길은 부챗살처럼 여러 갈래로 흐릅니다. 다빈치의 눈은 진실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그의 눈 앞에선 제 가면과 분장이 굳기 전 아스팔트 길처럼 흐물흐물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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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개의 가느다란 선들로 이루어진 투명한 세밀화가 유화油畵라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에어스프레이를 이용해 피부의 매끄러움을 표현하고 그 물감이 마르기 전 면봉이나 붓을 사용해 살갗의 잔주름, 솜털, 땀구멍 등을 묘사한 거라고 합니다. 겨우 서너 시간의 수면을 취하면서도 하루가 너무 짧다고 생각한 작가는 특별한 훈련으로 작업시간을 단축했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오른손을 몸과 함께 묶어 사용할 수 없게 한 후 왼손만을 사용하는 훈련을 통해 양손잡이가 된 것입니다. 양손잡이 천재 다빈치가 생각납니다.

구상화가 각광받던 1970년대에 미술대학을 다닌 강 형구씨는 학교와 시대의 요구에 충실하지 않아 일찌감치 화단의 이단아가 되었다고 합니다. 회사원을 거쳐 갤러리 운영자로 살다가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매달렸고 2001년에야 대중에게 작품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가의 자화상엔 그가 그린 거장의 얼굴들에 담긴 고통과 고뇌, 도전과 저항이 모두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 얼굴들은 아까 갤러리 밖에서 보았던 얼굴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거리의 얼굴들엔 깊은 고통과 고뇌 대신 피로와 짜증이 역력합니다. 종교에 기대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운명에 대한 저항과 도전 또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낯익고도 낯선 초상들을 응시하는 제 머리 속에 몇 개의 질문이 맴을 돕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이며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러고 보면 남의 얼굴은 내 지도입니다.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내가 가려 하는 곳은 어디인지 문득 선명해집니다. 돌아오는 길, 천안 역에서 2,600원을 내고 서울로 가는 전철을 탑니다. 옆으로 긴 창엔 안개비에 젖은 초록 풍경이 가득합니다. “응시”에 지친 눈을 초록에 담갔다가 잠시 감아봅니다. 아라리오 갤러리의 안팎에서 본 얼굴들과 연일 텔레비전과 신문을 어지럽히는 얼굴들을 생각합니다. 상대를 팔매질하느라 제 얼굴을 망쳐가는 정치인들, 학력을 속이고 살다 언론의 놀이개가 된 유명 인사들.

강 형구씨나 고흐처럼 철저하게 싸우진 못한다 해도, 그들만큼 위대한 수확을 거두진 못한다 해도, 하는 데까지 해보리라, 다짐합니다. 누가 압니까, 혹 길 잃은 이 두엇이라도 내 얼굴을 지도 삼아 길을 찾는 날이 오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