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존경하던 분이 손녀를 보았습니다. 아기 태어나고 며칠 후 만난 자리에서 아기 이름을 지었느냐고 물으니 아직 안 지었다며 "아들도 아닌데요, 뭐"합니다. '아들 아닌 딸이니 대수롭지 않다, 그러니 서둘러 이름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말로 들려, 깜짝 놀랐습니다. 이 분을 안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이분이 아들 딸을 차별하는 분인지는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을 수십년 간 알았다는 말은 그 사람을 수십년 동안 몰랐다는 말과 같은 말인가 봅니다.
유교적 분위기에서 태어나 자란 남자들 중엔 자신도 모르게 남녀차별주의자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결혼하여 딸만 갖게 되면 생각이 차츰 변화하지만 아들만 낳으면 차별적 사고가 고착화됩니다.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할 때는 나타나지 않던 차별적 사고가 무심코 뱉는 한마디에서 드러납니다. 위에 얘기한 분도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맏아들입니다. 게다가 자녀는 아들 둘 밖에 없으니 유교적 아들선호가 몸에 배인 듯합니다.
남녀차별적인 남자를 바꾸는 건 대개 딸 아니면 아내입니다. 딸이 없을 때는 아내가 더욱 중요합니다. 싸우든 대화를 하든 아내가 남편의 성차별적인 태도를 고쳐주어야 합니다. 성차별적인 남자라도 아들을 낳아준 아내에겐 '준남자' 대접을 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준남자' 대접을 받는 여자는 자신은 성차별의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 나아가 남성 일반의 성차별적 태도나 발언에 관용적이고, 여성 차별을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손녀를 차별하는 남자는 딸을 차별하고, 딸을 차별하는 남자는 아내를 차별하여 결국 여성 모두를 차별합니다.
앞으로 이 분을 만나면 어떻게 할까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그냥 덮어두는 건 옳은 일이 아니지만, 정색을 하고 이 얘길 하고나면 이분과 저 사이가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겁니다. 사실은 이 분에 대해 품고 있던 오래된 존경심이 이미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걱정입니다. 아기의 아버지도 자기 아버지처럼 남녀차별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어쩌나, 그 아기가 겪을지도 모를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착잡합니다. 부디 아기의 부모와 할머니의 노력으로 할아버지의 태도가 바뀌기를, 제가 다시 그 분에 대한 존경심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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