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예단비 이혼 (2011년 2월 6일)

divicom 2011. 2. 6. 12:40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정승원 부장판사)가 결혼 5개월 만에 A(여)씨와 남편 B씨가 서로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 내린 판결을 보니 참 놀랍습니다. 법원은 두 사람에게 갈라서라고 판결하고 남편 B씨더러 A씨에게 8억7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혼이 파국에 이르게 된 책임이 주로 B씨에게 있으니 B씨는 A씨로부터 받은 예단비 10억원 가운데 A씨가 청구한 8억원과, 실내장식 비용 4천만원, 위자료 3천만원을 A씨에게 줘야 한다고 판결한 겁니다. "결혼 전후에 주고받은 예물과 예단은 혼인이 성립하지 않으면 반환하기로 조건이 붙은 증여와 성격이 유사하다... 결혼이 단기간에 파탄 난 경우도 혼인이 성립하지 않은 때와 마찬가지로 해제 조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신의칙에 맞다"는 게 재판부의 결정입니다.

두 사람은 2009년 9월 결혼했는데 이 과정에서 A씨의 부모는 B씨 부모에게 예단비 10억원을 보냈다가 2억원을 돌려받았고 A씨는 신혼집 인테리어 비용으로 4천만원을 지출했다고 합니다. 결혼 직후 B씨 부모는 A씨에게 6천만원 상당의 스포츠클럽 회원권을 사주었는데, B씨가 그것을 돌려달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자신이 제공한 예물이나 예단의 반환을 적극적으로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결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가족에게 줄 선물에 대한 이견, 종교적 갈등, 성격 차이 등으로 불화를 겪다가, B씨가 이혼 의사를 밝힌 후엔 별거해왔는데 결혼할 때 주고받은 예단비 등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 맞소송을 냈다고 합니다.

 

담보가 없어 은행 돈 대신 신용금고에서 돈을 빌려 셋방을 얻고, 한복감과 버선 몇 켤레를 예단으로 주고 받고 결혼한 저 같은 사람에겐 다른 세상 얘기 같습니다. 부유한 신혼 부부는 예나 지금이나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행복은 재산순이 아니라는 것' 또한 동서고금의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부유함이 의미있는 것이 될 때는 부유하지 못한 이들을 도울 때뿐일 겁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부(富)는 욕심과 나태를 부추겨 사람의 발전과 우의를 저해하기 쉽습니다.

 

가난과 결핍은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하고 나날을 불편하게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최선을 하다 보면 자기 안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자신과 주변에 이로운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불편한' 상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이 오히려 결핍으로 스스로를 키우고 팀웍을 다져 함께 해로하기를, 언젠가 생의 끄트머리에서 '함께 성장한 아름다운 관계'였다고 회고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