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장희씨께 (2011년 2월 2일)

divicom 2011. 2. 2. 08:50

밤늦도록 자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길 참 잘했습니다. 그 덕에 당신의 사랑 고백을 받고 장미도 한아름 받았으니까요. 당신이 부르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40년 전만큼, 아니 그때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다 가수를 하는 게 아니구나, 시를 잘 쓰는 사람이 다 시인 노릇을 하는 게 아니구나, 당신 덕에 새삼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그건 너'를 듣지 못한 게 지금까지도 서운하지만 서운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생각하며 저 스스로를 달래겠습니다. 물론 희망도 있고 열망도 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당신이 세종문화회관이나 KBS홀에서 콘서트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때는 당신이 '나 그대에게...'와 '그건 너'와 '한잔의 추억'과 '한동안 뜸했었지'와 '불 꺼진 창'과 '비의 나그네'를 부르고, 당신이 곡이나 노랫말을 쓴 노래를 부른 가수들, 김세환,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씨 등이 찬조출연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무대 위는 물론 객석 곳곳에 당신 좋아하는 장미를 놓아 무심코 앉으려던 당신의 팬들이 '어머!' 행복한 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놀러와'의 '세시봉 콘서트'에서 당신은 당신과 함께 무대에 선 친구들은 물론, 잠을 줄여가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던 저와 무수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향해 "I love you"라고 여러 차례 말해주었습니다. 그 "I love you" 속 'love'는 제가 이제껏 들은 어떤 사랑보다 진실한,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사랑이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흔적도 없고 우정과 공감과 측은지심으로만 빚은 사랑이었습니다. 당신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겠습니다. 당신 같은 시인, 당신 같은 뮤지션과 같은 세대라는 게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당신 노래는 모두 절창이지만 그 중에서 한 곡만 골라 아래에 옮겨둡니다. '비의 나그네.' 반도음반이 1987년 9월 10일에 제작한 LP판을 이틀내리 들었습니다. 독특한 음색, 다양한 장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재능과 여유, 그리고 절제... 당신은 천재, 가슴이 따뜻한 천재입니다.

 

임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임의 발자욱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임이 가시나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임발자욱 소리 밤비 그치는 소리

밤비따라 왔다가 밤비따라 돌아가는

내 님은 비의 나그네

내려라 밤비야 내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주룩 내려라 끝없이 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