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도요안 신부님(2010년 11월 24일)

divicom 2010. 11. 24. 21:54
"한국인 노동자들의 벗이자 아버지였던 ‘노동자의 대부’ 도요안 신부(미국명 존 트리솔리니)가 22일 오후 3시께 선종했다. 향년 73세. 도 신부가 소속돼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도 신부님이 오늘오후 3-4시께 서울 성북구 보문동 노동사목회관 사제관에서 선종했다”며 “책상에 앉아 책을 집필하시던 중 조용히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도 신부는 1993년 신장암으로 한쪽 신장을 떼어낸 뒤 나머지 신장에도 종양이 생겨 그마저도 절반을 잘라내 매주 두번씩 투석을 해야하고, 2004년에는 척추암에 걸려 척추뼈 이식 수술까지 받았으나 일상적인 업무를 계속해왔다.

 

미국 뉴저지주 출신으로 남자수도회인 살레시오회 소속인 도요안 신부는 1959년 뉴저지 돈보스코 신학대 학생 때 선교사로 파견돼 광주 살레시오고에서 영어교사로 사목 실습을 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 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신부가 된 그는 1968년 다시 귀국해 공장지대였던 영등포의 도림동 성당에서 노동자들과 인연을 맺고, 1971년 설립된 노동사목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암울한 시절 박대받던 노동자들과 함께 한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추억하곤 했던 고인은 800여쌍의 노동자들에게 주례를 서줄 정도로 노동자들과 가까이 지냈다. 고 전태일 열사 분신사건 이듬해인 1971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노동사목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한국 노동자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애써 왔던 그는 1986년 종로성당에 노동사목회관을 마련한데 이어 1992년 명동에 외국인노동자 상담소를 설립했다.

 

그는 늘 말끝마다 “우리나라”라며 “우리나라에서 살다 우리나라에서 죽을 것”이라고 약속한 대로 ‘우리나라’에서 삶을 마감했다. 고인은 병마가 엄습해 선종을 앞둔 최근까지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소년처럼 맑은 미소를 머금은 채 노동사목회관 인근 성북천변을 산책해왔다.

 

고인의 장례는 살레시오회에서 주관한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살레시오회 관구관 7층에 마련됐으며 23일 오후3시 입관예절이 진행된다. 살레시오회는 “고인이 생전에 시신기증을 해 장지는 따로마련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례미사는 25일 오전 9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다. (02)828-3500."

                                                                              --11월 24일자 한겨레신문에서 인용.

 

 

신부님, 생전에 한번도 뵈온 적이 없는데 부음 기사 속에서 웃고 계신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우시어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평생 이 땅의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신 것보다 죽음을 맞이하며 보여주신 의연함을 배우고 싶은 것은 비겁하고 유약한 죽음을 적잖이 보았기 때문일까요?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정신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신 신부님,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