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나이는 많아지는데 일거리는 줄어드니 먹고 살 길이
막막합니다. 누군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가 보라 합니다.
내가 무슨 예술인이냐 하니 그 재단의 규정에 따르면
'예술인'이랍니다.
그 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15개 예술
분야 종사자들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15개 분야는 문학, 일반
미술, 디자인/공예, 전통 미술, 사진, 건축, 일반 음악, 대중
음악, 국악, 무용, 연극, 영화, 방송, 공연, 만화입니다.
제겐 8권의 저서와 10여 권의 번역서가 있고 그 중엔 시집과
시산문집도 있으니 재단의 기준으로 보면 '문학' 분야 예술인에
속할 겁니다. 용기를 내어 재단 웹사이트를 훑어봅니다.
재단의 지원을 받으려면 우선 '예술활동증명'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받으려면 제가 '예술활동'을 했음을, 그리고 그 활동으로
돈을 벌었음을 여러가지 서류와 증빙 자료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냥 제가 출간한 책들을 보면 될 텐데, 왜 이렇게 복잡한 걸까요?
'예술활동증명'을 받은 '예술인'이 '예술활동준비금지원'을
받으려면 '지원신청 확약 동의서' '개인정보 처리 동의서'
'부정수급·오지급반납 확약 동의서' '성명·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확인서' '선정이력에 관한 확인서' 등을 제출해야 합니다.
재단은 '예술인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라고 자처하지만,
웹사이트의 지원 요령을 읽어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저처럼 대단치 않은 '예술인'이 이럴 때 저보다 더 행정에
어두운 진짜 예술가가 재단의 도움을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울 것 같습니다.
2011년 1월 말 극심한 생활고와 그 생활고가 야기한 병으로
요절한 시나리오 작가/영화 감독 최고은 씨가 떠오릅니다.
재단이 2012년 11월에 설립됐으니 어쩌면 최고은 씨의 죽음이
재단 설립의 기폭제가 되었던 건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최고은 씨 같은 '예술인'이 있다면 그는 재단 덕에
죽지 않고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을 꽃피울 수 있을까요? 예술적
감수성에는 거의 항상 현실적 행정적 무능력이 수반되는데, 그
'예술인'은 그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재단의 '예술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한국예술인복지재단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 산하 기관의 지원도
대개 복잡한 행정적 절차를 해내야만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전에 그런 기관에서 일했던 사람에게서 그런 지원은 지원을 꼭
받아야 할 사람보다 그런 지원을 받는 데 '익숙한 혹은 특화된'
사람이 받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밟아야 할 절차가
어려워서 전에 그 기관에서 일했던 사람에게 커미션을 주고
서류 준비를 부탁하는 일까지 있다고 합니다.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에서 하반기 업무 보고를
하며 ‘문화강국 토대 강화’를 위해 예술인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소득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예술인들이 일반 직장인들처럼 상해·질병·
노후 등에 대비할 수 있게 사회보험 지원과 금융 지원도 확대할
거라고 했습니다.
다른 때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했을지도 모를 문화부의 장밋빛
보고가 쓴웃음을 자아냅니다. 문화부 지원의 수혜자 중에
예술가보다 '예술인 지원 받기에 특화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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