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엄마라는 치트키(2026년 8월 4일)

divicom 2026. 8. 4. 11:29

치트기(cheat key, 영어로는 보통 cheat code)는 본래 비디오 게임

용어입니다. 치트키는 개발자가 숨겨놓은 명령어인데, 이것을 입력하면

플레이어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거나 특별한 효과를 거두게 

된다고 합니다. 

 

이 나라에 내 아이를 '케어'하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부모들,

특히 엄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입니다. 그 부모들 때문에

'마마보이' '마마걸' 같은 용어가 유행했는데, 조롱 섞인 그 용어들은 이제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 그 용어를 쓰지 않게

된 거겠지요.

 

'마마보이' '마마걸' 대신 '엄미새'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는데, 그건 '엄마에게

미친 자식 새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 속이 상할 때

등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이 '엄마'를 찾는 풍조를

함축하는 단어입니다. 

 

'엄마'를 치트키로 쓰는 젊은이들은 참 편할 겁니다. 이때의 치트키는 '어려운

상황을 쉽게 해결하는 비법이나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라고 하니까요.

엄미새 젊은이들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다양한 상황에서 '엄마'라는 치트키를

쓴다면, 그들은 언제나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게 될까요? 혹시 영영 독립하지

못하고 '엄마'에 기생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요? 엄마가 죽은 후엔 어떨까요?

엄마가 없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치트키 노릇을 해줄 수 없는 엄마를 가진

젊은이들은 어떨까요?

 

자녀가 엄미새가 되는 건 자녀들만의 문제일까요? 혹시 엄마들 자신이 홀로

서기를 두려워하여 아이들을 옆에 두려 하는 건 아닐까요? 자녀에게 치트키

엄마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다 키워 내보낸 엄마들이 겪는다는

'빈 둥지 증후군' 같은  것을 겪지 않겠지요? 

 

대학생과 성인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던 '말랑이'를

가지고 놀고 4,50대가 가방에 여러 개의 인형을 달고 다니며 스스로 키덜트

임을 광고하는 사회,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아래에 경향신문

이윤정 기자의 기사를 옮겨둡니다. 맨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통화 목록 ‘엄마’로 가득”···청년들 너도나도 ‘엄미새’ 된 까닭

 

대학생 정다희씨(22)의 통화 목록은 ‘엄마’로 가득하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친구와

다툰 뒤 속상할 때도, 쇼핑을 나갈 때도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엄마다. 조금 비싼 맛집이나

마사지를 예약할 때도 함께하는 상대는 대부분 엄마다. 그는 “엄마랑 있으면 제일 편하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부담도 적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인플루언서 오수현씨(31·가명)도 마찬가지다.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엄마에게 털어놓고,

유행하는 릴스가 나오면 함께 찍자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던 엄마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카메라 앞에 선다. 엄마와 함께 올린 영상은 팔로어들의 반응도 좋다. 오씨는

“엄마는 부모라기보다 가장 친한 친구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한때 부모와 지나치게 가까운 성인 자녀는 ‘마마보이’ ‘마마걸’이라는 말로 조롱받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 SNS에선 엄마와 여행을 가고, 쇼핑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상을 자랑스럽게 올리는 젊은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을 가리켜

‘엄마에게 미친 자식새끼'라는 뜻의 신조어 ‘엄미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미성숙함의 상징이었던 부모와의 친밀함이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자 트렌드로

소비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유행어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엄미새’의 확산은

부모와 자녀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의미를 넘어, 청년들이 깊은 정서적 관계를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신호이기도 하다. 연인이나 친구보다 엄마가 더 편한

시대. 청년들의 친밀감은 왜 가족을 향하고 있는 걸까.

 

“연인보다 엄마”...친밀감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중략)

불황의 장기화와 청년층의 독립 지연이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취업과 주거 부담으로 부모로부터 심리적·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청년들은 새로운 관계보다 이미 신뢰가 형성된 가족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래는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면서 “취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사회에서는 끝까지 믿어주고 헌신해

주는 부모가 가장 안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마도 친구가 됐다”...달라진 부모 세대

 

엄미새(엄마에 미친 자식새끼) 현상은 자녀만 변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부모 역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대가 됐다. 40~50대 부모 세대는 과거 부모들보다 교육 수준이

높고 인터넷, SNS,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자녀와 함께 릴스를 찍고 해외

여행을 떠나며 맛집을 찾아 다니는 것이 더는 어색하지 않다. 부모와 자녀 사이 문화적

간극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정 교수는 “지금의 어머니 세대는 젊은 감각을 갖고 문화와

트렌드를 이해하는 세대”라며 “예전보다 세대 차이가 훨씬 작아졌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미국 CNN은 Z세대의 부모들이 이전 세대와 비교해

대중 문화와 디지털 환경을 함께 경험한 세대로, 자녀를 통제하기보다 친구처럼 소통하는

양육 방식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음악을 듣고, 함께 여행을 떠나며,

SNS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는 것이다.

 

경제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취업난과 높은 물가 속에서 골프나 호텔, 마사지처럼 비용이

드는 취미를 또래 친구와 즐기기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와 함께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정 교수는 “혼자 하기 어려운 소비나 취미를 부모와 함께

즐기면서 의존성이 강화되는 측면도 있다”며 “경제력이 있는 부모에게 기대는 것이

특별히 문제가 된다고 느끼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부모가 청년들의 든든한

안전망으로 자리 잡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독립 후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오는

미국의 ‘부메랑 세대’, 부모 집을 든든한 생활 기반으로 삼는 영국 청년들을 빗댄 ‘엄마 아빠

호텔’, 부모와 함께 살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중국의 ‘전업 자녀’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백화점과 여행업계가 오래전부터 ‘모녀 여행’과 ‘모녀 쇼핑’을 겨냥한 상품을 내놓을 정도로

모녀 소비가 하나의 시장을 이뤘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청년들의 독립을 늦추면서 부모는

경제적 지원자를 넘어 가장 가까운 생활 기반이자 정서적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한 관계’와 ‘홀로 서기’ 사이

 

다만 부모와 성인 자녀 간 친밀함이 깊어질수록 다른 질문도 함께 따라온다. 부모라는

안전한 관계는 어디까지는 힘이 되고, 어디서부터는 독립을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부모와의 친밀함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큰 시대일수록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가족은 정신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보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부모 세대와 친하게 지낸다는 점은 문제가 아니라며 “워낙 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한 시대이다 보니, 부모처럼 끝까지 믿어주고 헌신해주는 존재가 든든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제프리 아넷은 책 <신흥 성인기>에서 취업, 결혼, 독립이 늦어지면서

부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이 길어진 현상을 현대 청년기의 특징으로 설명했다.

그는 이를 ‘신흥 성인기’라는 새로운 생애 단계로 규정하며, 부모와의 긴밀한 관계가

과거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분석했다.

 

다만 부모와의 친밀함이 독립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아넷은 “부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이 길어진 것이 현대사회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보면서도 “부모의 정서적 지지가 자녀의 자율성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부모의 지지는 성장을 위한 기반이지, 성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정 교수도 엄미새 현상을 ‘친밀함’과 ‘독립’이라는 두 축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엄마와 친밀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일 수 있다”면서도 “인생에는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해 홀로 서는 발달과업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부모와 유대가 깊은 자녀일수록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통해 자율성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802094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