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쯤일까요? 제가 아름다운서당에서 대학생들과
고전을 읽을 때 만난 친구가 있습니다. 2,30명 학생들
중에 유독 눈길을 끈 그 친구는 얼굴도 예뻤지만 주변
친구들보다 한 차원 높은 정신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이유로 서당을 떠난 후 서당에 다녔던
학생들과도 자연히 연락이 끊겼는데, 그 친구와는
인연이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언니, 동생과도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힘을 합쳐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왔는지
알게 되며 제가 그 친구를 처음 보고 왜 '군계일학'이라고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을 두어 번인가 그만둔 그는
유수의 배달 플랫폼 회사 직원이 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능력 있는 데다 인간성이 훌륭해 일은 많아도
회사에 가는 게 즐겁다고 했습니다. 저도 직장 생활을
20년쯤 했으니 그런 직장이 가장 좋은 직장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그 회사 관련
기사를 챙겨보며 그 친구의 즐거운 직장 생활을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의 직장과 관련된 좋은 소식은 줄고
나쁜 소식이 많아졌습니다. 그 친구가 참 힘들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서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리더가 바뀔 때마다 회사 분위기가 나빠지더니 능력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 그만두고 능력 없는 사람들은 남아 있는
형국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생각이 깊고
참을성 많은 사람인지 잘 아는 저는 잘 그만두었다고
치하하며 밥을 샀습니다.
한 가지 속상한 건 회사가 그 친구를 해고한 게 아니고
그 친구가 자발적으로 그만두어 실업 급여를 받지
못하는 거였습니다. 단기 취업을 했다가 실업 급여를
받고 또 단기 취업을 했다가 실업 급여를 받는 사람이
많은 세상인데 그 친구처럼 열심히 일한 사람이 실업
급여를 받지 못한다니 속상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사표를 세 번 냈던 저는 돈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지만 이제 한 달에 국민연금 45만 7천원을
받아 살다 보니 돈의 중요성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 친구가 실업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게
더 속상한 것이지요.
다행인 건 그 친구와 제가 비슷한 낙관주의자라는 겁니다.
제 나날에서 거의 매일 일어나 저를 살게 하는 기적이
그의 나날에서도 일어날 거라는 낙관... 우리는 커피로써
그의 사직을 축하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친구가 계속
다녔다면 스트레스의 가중으로 인해 걸렸을 수 있는
큰 병을 미연에 방지한 것을 축하했습니다.
즐겁던 출근이 즐겁지 않을 때, 능력 있는 동료들은 떠나고
능력 없는 사람들만 남을 때, 그때야말로 직장을 떠나야 할
때라는 게 그와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수십 년의 나이
차이와 여러 가지 다른 점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된 건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떠나야 할 때'가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 내 친구 혜은씨, 새 출발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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