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전생을 믿는 사람 (2025년 12월 14일)

divicom 2025. 12. 14. 11:59

'전생이 어디 있어, 그런 건 믿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가끔 전생을 생각합니다. 특히 처음 접하는

사람이나 풍경이 낯익을 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오래 전 출장 길에 갔던 모스크바의 서점과 워싱턴

D.C.의 주택가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고, 40년 넘게

함께 사는 룸메이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끔은 제 전생 중에 승려 시절이 있었나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린 아기이던 시절부터 젖 달라고

우는 일이 없었고, 남들이 다 뛰어노는 나이에도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성인이 될 때까지 고기는

물론이고 음식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부모님의 말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처음으로 한국 절의 주지 스님이 된 외국 출신 스님의

기사에서 전생 얘기를 읽으니 다시 한 번 전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기사 아래에 붙은 댓글 중엔

'나는 전생 따윈 안 믿는다'고 쓴 글도 있지만 저는

전생을 믿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생을 믿는다는 건 지금의 생 또한 전생이 되리라는 걸

믿는 것이고, 전생이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믿는 것이니

전생을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나쁜 일을

덜 할 것 같아서입니다. 아래에  양주 회암사 주지가 되신

인공(印空) 스님 기사를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news1.kr/local/gyeonggi/6007590

 

“전생에 한국인이었을 수도…” 국내 첫 외국인 주지 인공 스님

인터뷰] 양주 회암사 주지 맡은 인도 출신 승려
'보스턴 사리 환수' 기여…작년에 한국 국적 얻어

조계종 회암사 주지 인공(印空) 스님 (사진=인공 스님 제공) /뉴스1 ⓒ News1

 

(양주=뉴스1) 이상휼 기자 = "전생에 한국 중이었을 것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나 역시 아니라고는 하지 않는다. 전생에 부처의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어 한

한국인 스님이었을 수도 있다."

 

경기 양주시 천보산 중턱의 사찰 회암사 주지는 인도 출신 1992년생 인공 스님이다.

그는 한국인 같은 외모에 유창한 우리말을 구사하지만 고향은 인도 히말라야 자락

타왕이라는 도시다. 윤회전생을 설파하는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전생에

한국 스님이었다고 생각한다. 산을 좋아해 이번 생에 히말라야산맥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인연을 따라 전생에 살던 한국으로 온 것이라 여긴다.

 

회암사는 고려 말인 1328년 인도 승려 지공 선사가 지었다고 한다. 지공은 석가모니가

활동한 마가다국에서 태어나 8세에 출가했고, 티베트와 중국을 거쳐 고려에 들어와

2년 7개월을 머물며 회암사를 짓고 우리나라 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공의 제자 나옹, 나옹의 제자 무학은 여말선초 불교 중흥을 이끌었고 이들의 부도탑은

회암사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인도 출신 승려가 창건한 회암사에 700년이 지나

다시 인도 출신 승려가 주지로 부임한 건 신기하고도 묘한 인연이다.

14대 달라이 라마와 교감을 나누는 인공 스님 (사진=인공 스님) /뉴스1 ⓒ News1

 

인공 스님은 7세 때 겔룩파 계열 티베트 사원으로 출가했다. 이어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을 알게 됐고, 12세 때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러 온 한국인 승려를

만나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인공이 머물던 사원에는 당시 3500명의 승려가 있었는데,

한국인은 1명이었다고 한다. 한국인 승려는 어린 인공을 눈여겨보고 "한국에서

공부해 보라"고 권했다. 그는 18세 성인이 되자마자 한국으로 왔다.

 

인공은 한국에 오고 1년이 지났을 무렵 기흉 진단을 받았으나, 주변의 도움으로

수술받아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인도에 있었더라면 치료를 제대로 받았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우리나라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의료 인프라라고 한다.

 

그는 양산 통도사를 비롯해 전국 각지 사찰에서 수행했으며, 자재암 동굴 법당에서는

1년 6개월간 기도 수행을 했다. 2023년 회암사 주지가 공석일 때 그를 눈여겨본

봉선사 교구장 스님이 '인도 스님과 인연이 있는 회암사에 가 덕업을 쌓아보라'며

주지 대행(부주지)으로 임명했다.

 

이듬해 5월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있던 '석가여래' '정광여래' '가섭여래' '지공' '나옹' 등

3여래 2조사의 사리가 85년 만에 국내로 환수돼 회암사에 영구 봉안됐다. 인공 스님은

당시 주지 대행을 맡은 공로를 인정받아 주지로 승격, 외국인 출신 첫 주지 스님이 됐다.

 

인공 스님은 작년엔 특별귀화를 통해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했다. 인도는 2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기에 영주권만 유지하고 있다. 인공 스님은 "부처 사리가 원래 있던

회암사로 돌아온 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라며 "사리 환수 과정에

고생한 분들이 너무나 많은데, 난 주지를 맡은 덕에 취득하기 어려운 한국 국적도 얻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