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대학수학
능력시험(수능) ‘불(火)영어’ 사태를 책임지고 사퇴했습니다.
수능 영어 시험의 난이도 조절 실패가 사퇴의 이유라고 합니다.
수능 영어에 절대평가가 도입된 건 2017년 수능부터인데,
원점수 90점 이상을 받으면 1등급이라고 합니다. 올해 수능에서
국어, 수학 등 상대평가 과목의 1등급 비율은 4퍼센트인데
영어에서 1등급을 받은 비율은 3.11퍼센트, 1만5145명으로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라고 합니다.
동아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는 영국 출신 번역가 폴 카버 씨는
지난달 칼럼에서 수능 영어 문제 전체를 보진 못하고 영문
매체에 소개된 다섯 개의 문제만 풀어보았는데, ' 부끄럽게도'
다섯 개 중 네 개만 맞혔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자신문과 통신사 국제국
기자로 15년 동안 일하고 미국대사관 전문위원을 지내고
20여 권의 책을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했지만, 결코 수능 영어
문제를 풀어보지 않습니다. 카버 씨는 다섯 개 중 네 개를
맞혔다지만 저는 그만큼도 못 맞힐 테니까요.
카버 씨도 얘기했지만, 제가 보기에 수능 영어 문제는 실제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시험 치르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저로선 왜 그런 시험을 치게 하는지, 지금처럼
이상한 대학 입시 제도가 왜 지속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학생 수도 빠르게 줄고 있으니
어떤 방식으로 어떤 학생을 뽑을 것인지 각 대학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들이 각자 세운 인재상에 맞춰
그렇게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게 하는
것이지요.
20세기식 시험으로 21세기 학생을 평가하게 하니 여러
분야에서 소위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는 한국에서 유독
대학만은 뒤처져 있는 거겠지요.
무거운 마음으로 폴 카버 씨의 칼럼을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카버 씨의 사진과 칼럼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원어민도 풀지 못하는 난감한 수능 영어[폴 카버 한국 블로그]
수능은 매년 소셜미디어에서도 단골 소재다. 최근 내 피드는 영어권
원어민들이 수능 영어 문제를 풀어보다가 처참하게 실패하는 영상들로
넘쳐난다. K리그 팀 FC서울도 여기에 가세해 영국 출신 제시 린가드
선수가 한 지문을 이해하지 못해 머리를 감싸 쥔 채 눈물을 머금는 듯한
영상을 올렸다. 나 역시 비슷한 콘텐츠에 출연한 적이 있다.
올해 수능 영어가 난이도 ‘상’이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전체
시험지를 보지는 못했다. 그 대신 한 영문 매체에서 소개한 다섯 개의
문제는 직접 풀어봤다. 부끄럽게도 다섯 개 중 네 개만 맞혔다. 그마저도
한 문제는 두 보기를 두고 몇 분을 망설이다 운 좋게 정답을 골랐다.
그 문제는 내가 속한 영국인 단체 채팅방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원어민들끼리 왜 그 보기가 정답인지, 혹은 아닌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성인 원어민조차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는 문제를,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는 한국의 10대가 어떻게 맞히라는 말일까. 그런데도 매년 만점자가
나온다. 나는 한국어-영어 번역을 전문으로 하고 있고, 영어 실력만큼은
평균적인 원어민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토익(TOEIC)도
단 한 번 응시해 만점을 받았다. 그럼에도 수능 영어는 매년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도대체 한국 학생들은 어떻게 원어민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을까.
답은 단순하다. 학생들은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험 푸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높은 점수는 영어 실력 자체라기보다 시험 구조에 대한
이해, 논리 퍼즐에 가까운 문항 유형, 수사적 함정과 예측 가능한 형식에
대한 숙련도를 반영한다. 한국 학생들은 똑똑하고 성실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영국 대학들이 본격적인 학사과정에 들어가기 전 한국 학생들에게
파운데이션 과정을 요구한다. 한국 교육이 영어로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논리적인 글을 쓰는 능력을 충분히 길러주지 못하는 것이다.
수능 영어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는 말하기와 쓰기 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두 능력은 실제 영어 소통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며, 세계 대부분의 언어
시험에서도 필수 평가 항목이다. 수능은 이보다 칸트 같은 철학자의 난해한
글을 해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런 텍스트는 영어권 대학생조차 읽기
버거울 수준이다. 나는 수도권의 한 상위권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지인에게 그중 한 문항을 보여주며, 만약 학생이 이런 글을 과제로 제출하면
어떻게 채점할지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명확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아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답했다.
한국 학생들은 왜 원어민조차 난해하고 비문에 가깝다고 느끼는 글로 영어
실력을 평가받고 있는 걸까. 내가 본 한 해명은 대학에서 접할 학술 지문에
대비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최근 서울시청이
유네스코 자문기관의 영문 공문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대응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을 보면 그 명분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51125/1328416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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