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한국방송이 올해 들어 가장 잘한 일은 조용필 씨의
무대를 준비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젯밤 '이 순간을
영원히' 콘서트를 보며 참 오랜만에 한국방송에 감사했습니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나운서와 지긋지긋한
'예능'과 연예인들,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얼굴을 보는 대신
수십 년 간 자신의 길을 닦아 온 아티스트를 보며 그의 음악을
들으니 참 행복했습니다.
화면 속 조용필 씨. 노래는 전과 같은데 사람은 더 겸손해져
보였습니다. 75세에도 '노래를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하고
매일 노래 연습을 한다는 '가왕'은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해
완벽을 기했습니다.
조용필이라는 크고 깊은 거울에 저를 비추어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그처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또는 '자의 반 타의 반' 잉여 인간이
된 그의 또래들도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조용필 씨처럼 좀 더
나은 상태에 이르기 위해 노력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덜
시끄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국 카메라는 꽤 자주 객석을 비추었는데, 남녀노소가
들어찬 객석은 수십 가지 색깔로 그린 그림 같았습니다.
노랫말에 상관없이 야구장의 관중처럼 제 기분에 빠져 방방
뛰는 사람들,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 가만히 무대를 응시하는
사람들, 함께 온 사람과 눈빛을 주고받거나 손을 잡는 사람들...
한 가지 분명한 건, 조용필 씨가 그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는 것입니다.
조용필 씨의 노래를 들으며 그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한데, 자막 처리되는 아름다운 노랫말이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우리 가요의 가사가 저렇게 깊이 있을 때가 있었구나, 격조 있는
한국어로 인생의 페이소스를 얘기하는 노래가 저리도 많았구나...
뿌듯한 마음 한편이 아팠습니다. 특별히 감동적이었던 건
조용필 씨가 KBS교향악단과 함께한 '슬픈 베아트리체'였습니다.
"...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빈 바다를 헤매는 내게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되어
사랑이란 소망의 섬 그 기슭에 다가갈 수 있다면
사랑이란 약속의 땅 그 곳에 깃들 수만 있다면..."
대통령 부부까지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 공화국'의
드문 아티스트로서 조용필 씨가 감내해야 할 외로움과 괴로움을
짐작하면서도, 염치없이 기원합니다.
용필 오빠, 감사합니다!
제 동시대인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세종문화회관 콘서트에서 뵈었을 때보다 더 감동적인
무대를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지금 같으소서!
내일도 모레도 미래에도 꼭 어제 같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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