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보며 집으로 오는 길,
연기 가득할 남녘을 생각합니다.
소나기가 쏟아져 저 산불을 다 꺼주면 얼마나
좋을까...
비 바라는 마음이 강은교 시인의 시집을
찾게 합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스물여덟 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마, 아직도
그칠 줄 모르는 화마, 그 불의 시작이 모두
혹은 거의 실화라니 기가막힙니다.
어리석은 나의 동행들이여, 부디 정신 차리시라!
아직 물이 되지 못하는 우리, 불만은 놓지 마시라!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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