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언제나 9일을 기준으로 나뉩니다.
9일 이전에는 외출을 삼가며 건강을 지키려 애쓰고
9일 이후 며칠은 할 일을 미뤄두고 쉬며 지냅니다.
9일이 무슨 날이냐고요?
9일은 제삿날입니다.
룸메의 부모님과 일년에 한 번 만나는 날입니다.
아버님은 제가 뵙기 전에 돌아가셔서 모습과 인품을
들은 얘기로만 짐작하지만, 어머님은 저와 함께 사신
적이 있어 더욱 그립습니다.
인간이 2,30대에 70대의 1년쯤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노년의 부모를
이해하는 자식이 훨씬 많아질 거고, 저도 어머님과
함께하던 시간 동안 어머님의 몸과 마음 상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젊은이가 노년을 미리 경험할 수는 없으니
젊은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노인을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꼭 100년을
살고 가셨는데, 90대의 어머님과 함께 살던 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안타깝습니다.
1월 9일은 그 안타까움을 전하는 날입니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잡채를 하며 어머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어머님이 하시던 대로 시금치를
다듬으며 어머님의 미소를 봅니다.
평소에 사 먹지 못하던 비싼 과일을 사며
어머님의 눈이 행복한 놀람으로 커지는 것을 봅니다.
살아 생전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님과도 얘기를
나눕니다. 아버님 화내시는 걸 뵌 적이 없다는
룸메의 말 때문일까요? 상상 속 아버님은 늘
온화하십니다. 약주를 좋아하셨다니 제가 결혼할
때까지 살아계셨으면 막내 며느리와 술잔을
기울이셨을 텐데... 함께 만들지 못한 추억이
안타깝습니다.
제삿날은 그 안타까움을 덜어주는 날입니다.
아버님이 남기신 술을 음복하며 직접 겪지 못한
그분의 사랑을 느낍니다.
어제도 오늘도 제 몸에선 파스와 '박찬호 크림'
냄새가 진동하고 해야 할 일들은 미뤄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조급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가 보지 못한 온천의 물에 몸을 담그듯 반가운
해후의 후유증 속에서 휴식합니다.
제삿날이 있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