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 옆에 괄호를 열고 '2022'를 쳐 넣으려 했는데
오른손 약지가 0 대신 9를 치는 바람에 '2922'년이 되었습니다.
와, 키 하나 잘못 쳤을 뿐인데 9백 년 후!
그때도 지구가 있을까요? 지구에 사람이 살까요?
한반도는 어떨까요? 한반도엔 지금 한국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살까요? 언어는 어떨까요? 한국어는 그때도 살아 있을까요?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 같은 일이 일어나 그때 지금 제가 사는
동네에 사는 사람과 제가 만난다면 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동시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조차 해득 불능이니까요.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이 경향신문에 연재하던 칼럼이 끝난다고
합니다. 하 소장의 글은 대부분의 다른 칼럼들과 달라 좋아했는데... 서운합니다.
하 소장과 북유럽연구소의 활약과 발전을 기원하며 그의 마지막 칼럼을 옮겨둡니다.
정동칼럼
화성 꼰대, 금성 MZ ‘언어 소통법’
2020년 1월부터 2022년 6월까지 4주에 한 번씩 썼다. 마지막 칼럼을 무슨 주제로 쓸지 고민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나의 가족이 주문하길, 비판은 여기저기 넘쳐나니 희망을 주는 칼럼을 쓰라고 했다. 그리하여 마지막은 여태껏 썼던 모든 칼럼보다 생산적이고 담대한 제안을 담기로 결심했다. 우리 사회의 묵은 과제 중 하나인 세대통합을 이루고 요즘 여러 군데서 지적하는 젊은 세대의 신조어 사용과 문해력 약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이다.
요즘 아이들끼리 하는 말을 들으면 번역기가 필요할 정도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아이1: ‘솔까말’ 나만의 ‘상플’이었어. ‘멍청비용’ 날려먹었잖아. ‘킹받뜨라쉬’ ‘갑통알’이야. ‘스라밸’이나 챙기면서 ‘복세편살’해야지. 너 오늘도 ‘남아공’? 어쩐지 ‘고지식’하더라. ‘오나전’ ‘업글인간’이네. 좀 ‘이지적’으로 살아.
아이2: ‘싫존주의’해줘라. ‘쉽살재빙’이야 ‘갓생’살아야지. 너도 ‘빠태’해라.
이게 무슨 소리냐 어리둥절한 분들을 위해 번역을 붙인다.
아이1: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이었어. 꼼꼼하게 따져봤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추가 비용을 날려먹었잖아. 어찌나 화가 나는지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아르바이트해야겠더라고. 공부와 삶의 균형을 챙기면서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아야지. 너 오늘도 남아서 공부하는 거야? 어쩐지 지식수준이 높더라. 완전 내면의 발전과 성장에 집중하는 인간이네. 좀 쉽게 살아.
아이2: 싫어도 존중해줘라.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멋지게 생산적으로 살아야지. 너도 빠른 태세 전환해라.
위에 언급한 ‘갓생’의 ‘갓’은 머리에 쓰는 갓이 아닌 ‘GOD(신)’이다. “이게 어느 나라 말이냐” “세종대왕이 땅을 치실 일이다” 하는 꼰대 어르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반응을 접한 Z세대는 “어쩔티비?” 하고는 돌아설 것이다. “어쩔티비는 도대체 뭐야? 아무 상관도 없는 티브이는 왜 갖다 붙여?” 한다면, 과거 ‘웃기는 짜장’에는 무슨 맥락이 있었나? 유행어란 그냥 그런 것이다.
말은 사회의 특성을 반영해 변한다. 요즘의 신조어는 정보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휴대전화 메시지나 SNS 메신저 등을 주로 이용해 문자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길게 설명하기보다 줄임말을 쓰거나 축약어 사용이 늘었다. 영어에서 머리글자만 따서 만드는 두문자처럼 여러 단어나 문구의 앞자만 떼어붙여 축약어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말투는 주로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사용되는데 또래집단이 아닌 상대와 대화할 때는 쓰지 않기 때문에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세대통합을 이루는 동시에 바르고 고운 한국어를 장려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기성세대가 그 말을 쓰면 된다. 586세대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1990년대생은 이제 30대에 들어섰고, 90년대생마저 자기들과는 완전히 다른 신인류라 말하는 Z세대와의 소통을 준비할 때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와 부장급 이상 관리자라면 지금부터라도 신조어 단어장을 만들어 하나하나 외워가며 실전에 응용해보자.
월요일 아침 전체 회의에서 실장님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이번 신제품 유튜브 광고 정말 홀리몰리 과카몰리 로보카폴리 롤리폴리(아주 좋다)였습니다. 좋댓구알(좋아요, 댓글, 구독, 알림 설정) 안 한 사람 없겠지요?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수요일은 팀 회식이니 다들 캘박(캘린더에 박제)하시고 점메추(점심 메뉴 추천) 부탁해요.”
2030 팀원들은 깜짝 놀라는 동시에 양가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젊은 세대와 어울리기 위해 저렇게까지 노력하는 상사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더 이상 저 언어가 우리만의 언어가 아닌 것 같은 서운함이다. 즐겨 쓰던 축약어가 왠지 구리게 느껴지면서 사용을 주저하게 되고 점차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이번에는 부모용이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10대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보자.
“커여븐 우리 뽀시래기 머선129, 다 사바사니까 킹받지말고 오히려 좋아. 오저치고?
해석은 이렇다. “귀여운 우리 애기 무슨 일이야? 다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화내지 말고 전화위복이 될 거야. 오늘 저녁 치킨 먹을까?” 아이에게 ‘ㄱㄱ’라는 답이 오면 ♥(하트) 하나 보내면 된다.
어떤가, 세대 통합과 동시에 자발적 언어 순화를 이룰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아닌가? 쿠쿠루삥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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