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126: 노인의 얼굴 (2022년 7월 9일)

divicom 2022. 7. 9. 07:53

가능한 한 단순하게 살려 하지만 어젠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엔 모기에 네 곳을 물렸고 오전엔 아름다운서당 이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이사회 참석 중에 문자를 받았습니다. 오빠가 응급실에 갔는데

꽤 오래 입원해야 할 것 같으니 집에 혼자 계실 어머니를 챙겨달라는.

 

칠십 대의 이사장 님은 '전엔 즐겁게 하던 일이 이젠 힘에 부친다'며

이사장 직을 내려놓겠다고 하셨고, 이사 중 한 분은 생애 처음으로 깁스를 했던

왼팔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힘겨워 했습니다.   

 

오후. 오전에 치과에 다녀오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 치료에 대해 여쭈니

질문엔 답변을 안하시고 딴소리만 하셨습니다.  새로 산 보청기가 이상해

안 들리신다기에 목소리를 크게 하여 대화를 시도했더니 금세 목이

갈라지고 머리가 빙빙 돌아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죽을 사가지고 가겠노라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죽 가게에서 죽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안 와?" "지금 죽집에서 죽 나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다섯 번을 얘기해도

못 알아들으시니 다시 머리가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고기를 싫어하시니 녹두죽과 새우죽을 샀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댁으로 가니 현관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컴컴한 집의 부엌에만 불이 켜져 있고

어머니가 서성이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맛있다' '잘 끓였네'를 연발하시며

죽을 드셨지만 대화의 맛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전력을 다해 큰소리로

말씀드려도 '너는 말을 너무 작게 한다'고 핀잔하셨습니다.

 

밤. 어머니, 오빠, 그리고 저를 포함한 이사회의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의 얼굴을 이 모양으로 만든 건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