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쌓여가며 화를 쉽게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남이 알게 모르게 화를 낼 때가 있는데,
그건 대개 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정신이 전처럼 작동하지 않아
바보처럼 행동할 때가 있고, 꼭 해야 하는 말 아닌
말을 해놓고 아차! 할 때도 있습니다.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할 때 집중력이 전 같지 않아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밥벌이를 해야 하는데 정신과 육체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으면 어쩌라고!
제 처지가 이러니 다른 노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저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저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사십 대나 오십 대 때에 비해
어느 정도 작동 중일까... 안쓰러운 질문으로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에서 ‘늙음’을 ‘설렘’과 연결지은
책 광고를 보았습니다. ‘늙음’이 뭔지 머리로만 알고
실제로는 모르는 젊은이가 쓴 책인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잘 작동 중인데다 밥벌이 노동도
할 필요가 없는 운 좋은 노인 저자인가?
다분히 냉소적인 궁금증을 느낀 후에야
늙어가는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늙음’에도 ‘설렘’과 ‘반가움’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글을 쓸 때는 설레고 친구를 만날 때는 반갑습니다.
글은 가보지 않은 세계를 가는 것이니 설레고
친구는 모두 은인이니 반가운 것이지요.
정신과 육체의 능력은 나이 들며 줄어도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만큼은
더 크게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제가 저에게 화내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