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불행한 시절을 건너는 법(2020년 5월 6일)

divicom 2020. 5. 6. 09:34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나라경제' 5월호에

제 글이 실렸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이슈' 난에'코로나시대의 삶'이라는 큰 제목 아래 실린 일곱 개의 글 중 하나입니다.


이 글의 제목은 '불행한 시절을 건너는 법'인데, 다르게 표현하면

'코로나19시대를 사는 법' 혹은 '재앙 너머의 삶'쯤 되겠지요. 

'나라경제'의 지면이 좁아 다하지 못한 말은 곧 출간될 제 시산문집 <쉿,>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나라경제'에 실린 유명 필자들의 다양한 글로 연결됩니다.

http://eiec.kdi.re.kr/publish/naraView.do?fcode=00002000040000100009&cidx=12539&sel_year=2020&sel_month=05



불행한 시절을 건너는 법

김흥숙 <밥상에서 세상으로: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것들> 저자


코로나19는 재앙입니다. 재앙은 거대하고도 미시적인 거울입니다. 21세기 두 번째 십년을 앞두고 인류를 공격한 코로나19는 바로 이 시대를 이루는 사회와 사람들의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폭행을 가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발발했다는 이유로 모든 아시아인을 적대하는 것이지요. 프랑스에서는 의료전문가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아프리카에서 시험하자고 제안했다가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평화한 시대에 숨어 있던 인종차별적 태도가 재앙 덕에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희생자를 줄이는 데 힘을 보태려고 의료현장으로 달려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위해 돼지저금통을 연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에 의사를 파견하고 어떤 나라는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재앙은 사랑을 증명하는 과격한 장치’임을 보여준 것이지요.

전 지구인이 신종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며 일상은 정지되거나 바뀌었습니다. 철없는 사람들은 바뀐 일상이 불편하다고 불평합니다. 마스크가 성가시다는 사람들, 격리상태가 심심하다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혼자 있으면 재미없다며 모이는 사람들, 아이들 공부가 뒤처져 큰일났다는 사람들…. 그러나 운이 좋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이 이 전쟁을 초래했는지 들여다봄으로써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때 이른 죽음을 맞은 동료 인간들을 애도하며, 바삐 사느라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고 책을 읽어야 합니다.

영국 최대 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즈(Waterstones)의 온라인 매출은 400%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280여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닫았지만 온라인 판매가 급격히 늘었는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Beloved)」,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실비아 플라스의 유일한 소설 「벨 자(The Bell Jar)」와 같은 작품이 가장 잘 팔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온라인 책 판매가 늘었습니다. 판매를 견인하는 건 주로 어린이 및 청소년용 문학도서와 놀이교육도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요리책과 손글씨책 등 취미도서라고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평일 평균 독서시간은 31.8분 정도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지 않던 국민이 갑자기 「백년 동안의 고독」처럼 두꺼운 소설을 읽게 되진 않겠지요.

긴 소설이 내키지 않으면 짧은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 어떨까요? 계절에 맞게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김유정의 ‘봄봄’부터 시작해도 좋겠지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도 서정과 해학을 잃지 않았던 두 사람 덕에 우리의 본모습을 찾아내고 불행한 현실에 대처하는 법도 배울 수 있을지 모릅니다.

책은 재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며, 불행한 시절을 건너는 길을 알려주는 지도입니다. 살기 힘든 시대일수록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