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신문, 즉 글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전혀 몰랐던 정보나 지식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엊그제 신문에서 만난 조진만 건축가의 글에서 바로 그런 즐거움을 만났습니다.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는 '프루이트 이고'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이 공동주택의 실패는 2011년 채드 프리드릭스 감독에 의해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과문한 저는 이 역사적 아이러니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조진만 건축가에게 감사하며 그의 글을 옮겨둡니다.
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반전
조진만 건축가1972년 7월15일 오후 3시32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멀쩡한 대형 아파트단지 프루이트 아이고는 다이너마이트 폭발음과 함께 한순간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지어진 지 17년밖에 안 된 이 건축은 뉴욕 무역센터를 설계한 당시 최고의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에 의해 공모로 선출되었다. 다양한 인문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모든 질서가 치밀하게 계획된 최첨단 시설로 공동주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호평과 함께 각종 건축상을 휩쓸었다.
약 7만평의 땅에 총 33개동 2762가구를 질서 정연하게 배열하고 단지 내부를 기능과 효율에 따라 세밀하게 구획하였다. 그러나 칼로 자른 듯 과도한 질서는 거주민을 은연중 억압하고 분절시켜 갈등을 유발하였고 결국 단지 전체가 인종차별과 각종 범죄의 소굴이 되고 만다. 자연스레 빈집이 늘어가고, 유리창은 깨진 채로 방치되었으며 엘리베이터는 운행을 멈추었다. 보다 못한 당국은 마침내 단지를 폭파시키고 공원화해버렸다.
한편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다비드의 탑’이라는 짓다만 45층 고층건물이 있다. 1993년 개발자가 사망하고 지역경제도 붕괴되면서 이 건물은 뼈대만 완성된 시점에 영구히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지속된 불황으로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이 하나둘 10여년간 방치된 다비드의 탑에 모여드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곳은 현재 750가구 이상이 불법거주하며 세계 최고층의 “수직형 빈민가”라 불린다.
초기에 임시거처로 텐트를 치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점차 건물을 변형시킨다. 비바람을 막고 옆집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자 공수한 각종 자재들로 외벽과 방을 만들며 뼈대뿐인 사무실 건물을 공동주택으로 완성시켜 나간다. 이들이 채운 것은 비단 미완성 건물의 외관이 아닌 유기적이고 자율적인 공동체였다. 그들은 게시판을 통해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공용 공간을 청소한다. 즉흥적이고 자발적으로 운동장, 교회, 상점 같은 공간을 만들며 건물이 마치 하나의 도시처럼 작동한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모두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계단은 45층까지 쉬엄쉬엄 오르내리며 이웃과의 유대감을 쌓는 소통의 핵심공간이다. 이 미완의 탑은 거주자의 최소한의 느슨한 질서와 자율성에 의해 공간의 형태나 그 공동체의 관계성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열린 건축이다.
오늘날 모든 도시와 단지는 풍족하고 효율적이며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질서 있게 규칙적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그러한 공간이 유대감을 형성하고 행복을 보장할까? 아니라고 본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무질서의 효용>에서 말했듯 결핍과 무질서는 오히려 성숙하고 건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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