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한평 반의 평화)

아버지의 뗏목(2006년 8월 8일)

divicom 2009. 10. 31. 12:23

글 김흥숙·그림 김수자

▲ 여든 해를 항해해온 당신의 아름다운 뗏목
ⓒ 김수자
태풍과 장마 끝, 덥고 습하니 아픈 사람들이 더 아프겠구나 생각하자 며칠 전 뵈었던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허리를 삐끗하시어 여러 날 불편을 겪고 계신 아버지를 모시고 나선 외식 길, 오랜만에 자동차 뒷좌석에 부녀가 나란히 앉았습니다. 아버지의 왼손이 잠시도 쉬지 않고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이유 없는 움직임은 천하다고 생각하시던 분인데…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손을 끌어다 주물러드리며 '내가 감히 아버지의 손을 마음대로 만지다니' 문득 혼자 놀랐습니다.

'엄부자모(嚴父慈母)'라야 자식들을 제대로 키워낼 수 있다고 믿으신 아버지의 엄격함은 우리 집안은 물론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습니다. 자세가 비뚤어지거나 함부로 걸을 때, 얼굴을 찡그리거나 볼멘 소리를 할 때, 아버지의 시선은 날 선 회초리가 되어 자식들을 훈육했습니다. 젓가락질을 못하는 아이는 잘 하게 될 때까지 성냥개비로 훈련을 받았고, 밥상에선 언제나 국내외 현안과 사회 정의, 근검 절약을 가르치셨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어렵게 사느라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아버지는, 없는 살림살이에도 대여섯 가지의 신문을 구독하는 독특한 가풍을 세웠습니다.

때론 강물처럼 때론 바다처럼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어느새 여든 넘은 노인이 되셨습니다. 아침을 먹으면 점심을 걱정해야 하던 분이 이젠 의식주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고 수하의 자식들도 다 제 앞가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외 없이도 공부를 곧잘 하던 당신의 아들, 딸들과 달리 손자 손녀들은 과외를 해도 공부를 못하지만 타박하시는 대신 용돈을 집어주십니다.

변한 건 아버지만이 아닙니다. 할 말이 있어도 아버지 앞에선 감히 입을 떼지 못하던 아이들이 이제 다 중년이 되었습니다. 저들도 살만큼 살았다고 세상사를 아는 척 하며 말대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자식들의 방자함이 더할까 두려우신지, 아버지는 야단을 치는 대신 세뱃돈도 주시고 차비도 주십니다.

아버지는 "의식주 걱정만 안 하고 살면 좋겠다 했는데 이만큼 살게 되었고 자식들도 원하던 대로 되었으니 내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성공한 자식들도 아니고 내놓을 만한 부자 하나도 없으니 아버지는 원래 욕심이 없는 분인가 봅니다.

"죽은 후에 천당에 가고 싶지 않으냐"는 장로 친구에게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는데 죽은 뒤까지 천당을 가려 한다면 이번 생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안 된다. 죽은 후에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살아서 고생한 사람들이 천당에 가고 나처럼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지옥에 가야 공평하다"고 하여, 친구로 하여금 자신의 믿음을 돌이켜보게 하십니다.

여름이 익어가는 날, 낡은 요 위에서 손수 아픈 팔다리를 주무르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 요는 아버지의 뗏목입니다.
여러 십 년 전 노령산맥 자락에서 외로운 항해를 시작한 열두 살 아이, 스스로 엮은 뗏목에 몸을 실어 급류에 휩쓸리고 바위에 부딪치며 자신을 키워온 이. 그 뗏목은 지금 옛 화장터 아래 동네에 정박 중입니다. 어쩌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밤 아버지도 인생은 혼자 하는 항해라는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그 뗏목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