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에 산책길에 나서면 두툼한 성경책과 찬송가를 옆구리에 끼고 착한 표정을 짓는
정장 차림 사람들이 보입니다. 길에는 언제나 착한 사람, 착한 척하는 사람,
착하다고 잘 사나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라고 작은 물휴지 봉지를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을 물끄러미 보게 됩니다.
'당신의 종교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습니까?' 침묵 속에 묻는 것이지요.
어제 참석한 회의에서 만난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교회에 오는 사람들 중 절반쯤은
예수님처럼 살려고 교회에 나오고 나머지 절반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이유로
교회에 다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절반이나 예수님처럼 살려 한다고? 침묵 속에 반문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보다 훨씬 적은 것 같아서지요.
오늘 아침에 읽은 칼럼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아래에 옮겨둡니다.
사유와 성찰]‘3대 종교’에 가장 시급한 일은 ‘속죄’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2016년 4월13일에 선출된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개신교, 가톨릭, 불교(이하에선 ‘3대 종교’라고 부르겠다)의 신자는 74%에 이른다. 한편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인구는 전체의 43.9%다. 이 중 ‘3대 종교’에 속한 이들이 98% 이상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전체 인구 중 ‘3대 종교’의 신자는 43%쯤 되겠다. 이 비율과 ‘3대 종교’ 신자인 국회의원의 비율을 비교하면 ‘20대 국회’에서 이 세 종교가 한국사회를 과잉대표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19대 국회’에선 그 비율이 80%나 되었다.
지난 10월25일 한국갤럽이 조사한 ‘20대 국회의 역할수행에 관한 국민들의 평가는 83%가 부정적이었고, 긍정적 평가를 내린 국민은 10%에 불과했다. 국민이 평가한 이들의 점수는 40점이었다. ‘19대 국회’는 42점을 받았으니, ‘20대 국회’에서 더 나빠졌다고 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대동소이하다. 이런 처참한 결과가 단지 국민의 단견에 불과한 것이 아님은 법안처리 건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접수된 법안 중 처리된 것의 비율은 올해 5월28일 현재 30%에 불과하다. 이번 국회 마지막 회기가 열흘 정도 남은 현재 이 비율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이 법안들에 대한 심의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입법부임에도 입법의 기능은 거의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부정적인 평가의 사례는 이것만이 아니다. 정쟁이 아닌 정치 행위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균형감 없는 권력투쟁에만 올인한 국회였다. 그 정쟁의 질도 최악이었다. 독설과 고함만 가득했고 논리는 없었다.
20만명이 넘는 국민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청원’을 했고, 국회 회기 마지막에라도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민생법안을 처리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물론 ‘20대 국회’는 그것마저 외면할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20대 국회’는 없어도 그만인 국회였고 없는 게 나았을 국회였다.
그렇다면 이런 처참한 국회의 현실에 대해 ‘3대 종교’는 책임질 게 없는가. 위에서 말했듯이 ‘3대 종교’는 국회의원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으니 잘못한 것의 4분의 3은 세 종교가 짊어져야 할 몫이 아니겠는가.
물론 74%에 이르는 국회의원들은 종교인이면서 법조인, 교수, 언론인, 관료, 기업인 등등이었다. 그러니 책임져야 할 범주는 종교만이 아니다. 하지만 종교는 이런 여러 범주의 파워엘리트들 간의 이기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종교라는 장(場)은 평범한 신자들의 집합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분야의 파워엘리트 간의 연결망을 통해 자원의 불균등한 배분체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꽤나 실한 떡고물을 얻어먹으면서 더 강력한 종교세력이 되었다. 그러니 국민을 대변하는 데는 무심하고 권력게임에는 절정의 민감성을 드러내고 있는 국회,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회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3대 종교’도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실은 이렇게 말할 때 상대적으로 억울한 종교가 있다. 불교가 그렇다. 2015년 인구센서스를 제외하고는 교세가 항상 1위였던 종교였지만 세 종교 가운데 국회의원 수는 제일 적다. 반면 개신교는 그 반대다. 2015년 개신교는 처음으로 종교인구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의 주인공이었는데, 그 비율이 19.7%다. 한데 국회의원 비율은 31%나 된다. 이는 ‘19대 국회’에선 더욱 심각했다. 무려 42%에 육박했었다. 하지만 책임이 더한 종교와 덜한 종교가 있겠지만, ‘3대 종교’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셋 다 사회적으로 다른 종교나 시민사회 영역에 비해 훨씬 많은 특혜를 누려왔고 그것은 국회의원 중 ‘3대 종교’ 신자가 차지하는 과한 비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3대 종교’의 중대한 문제점 중 하나는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이런 현상에 대한 책임의식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불교에 대해서는 과문한 탓에 이야기할 게 별로 없지만, 20세기 서양의 개신교와 가톨릭은 교회뿐 아니라 국가의 잘못에 대해 사회의 여러 단위들보다 앞서서 속죄하고 그것을 행동화하는 일에 적극 나서게 된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 반면 한국의 개신교는 오늘까지도 무수한 인권침해의 온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사과하지 않는다. 개신교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두 거대 종교도 그렇다.
해서 오늘 한국사회에서 많은 이들에게 ‘적폐’로 낙인찍혀 버린 ‘3대 종교’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속죄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화하는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국회가 국민을 위한 역할수행에 나서도록 요구하는 것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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