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남편들 얘기를 합니다.
소위 명문대학을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위에서 오래 활약했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은퇴해
표 안나는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몸 어딘가가 고장나 119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고,
얼마 동안 입원했다 퇴원했으나 육체와 정신이 두루 예전 같지 않아서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하면, 사소한 물건 하나를 찾느라 온 집안을 뱅뱅 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떤 남편은 죄 없는 아내에게 화를 내고, 어떤 남편은 자신이 떠나고 난 후 혼자 남을 아내를 걱정하고...
사람마다 증세는 다르지만 노화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처음 겪는 일은 신기하고 좋은 일이 많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처음 겪는 일은 주로 노화와 관련된 것입니다.
소리 없이 나타나는 주름살과 검버섯은 물론이고 언어 능력이 저하되어
사람 이름 등 고유명사가 떠오르지 않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보통명사까지 떠오르지 않는 일 같은 것이지요.
예민한 사림일수록 노화가 수반하는 부작용에 크게 상처받아 '바보가 된'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가장 가까운 배우자에게 그 분노를 쏟아붓는 일이 많습니다.
젊은 부부라면 왜 내게 화를 내느냐고 싸움을 키우겠지만 제 친구들은 이미 '언덕을 넘은(over the hill)'
사람들답게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각기 다른 남편과 살아도 아내들의 반응은 한 가지, 즉 '측은하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이 남편들을 측은해 하는 만큼 남편들도 아내들을 측은해 하겠지요.
"이제 둘이 합해 하나에요, 간신히 하나!" 친구들 중 제일 연장자인 선배님이 얘기하자 모두들 맞다며 웃습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혼자서는 한 사람의 몫을 해내지 못하고 누군가와 힘을 합해야만
간신히 사람 노릇을 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그 누군가가 오래 함께 산 배우자나 오래 묵은 친구라면
운이 좋은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독거인들의 시대입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은 누구와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될까요?
결혼이 거의 불가능한 선택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청년들이 노년에 들 때, 그때 그들은
누구와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는, 측은지심만 오롯한 상태에 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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