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어떤 사람들은 삭발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단식을 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민이의 아빠 김영오 씨는
46일 동안이나 단식을 했지만 요즘 정치인들은 대개
몸에 좋을 정도로만 단식을 합니다.
삭발은 '몸에 좋을 정도의 단식'에도 못 미치는 제스처입니다.
머리는 곧 자라니까요.
1990년 대 중반 저도 삭발 비슷한 것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시던 어머니가 치료의 고통보다 머리카락이 빠져
여성적 아름다움을 잃게 되는 것에 마음을 쓰실 때였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나면 머리카락이 다시 난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어머니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머리카락도 없이 어떻게 사느냐"며
슬퍼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생각을 바꾸려면 직접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용실에 가서 제 머리를 바싹 깎았습니다.
요즘은 민둥산 머리로 정체성을 삼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시엔 그런 머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머리를 밀어달라는 제 주문에 "무슨 일이 있기에 그러시느냐"며
계속 머뭇거리던 미용사가 떠오릅니다.
결국 그와 제 의견이 절충되어 완전히 미는 대신
바싹 깎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깎는 데 용기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는 곧 자랄 테니 문제 될 것이 없었고
혹시 자라지 않는다 해도, 그동안 긴 머리로 살았으니
이젠 머리카락 없이 사는 것도 문제 될 것 없었습니다.
머리를 깎고 나니 그렇게 편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 더운 날씨인데 땀이 날 때마다 수도꼭지 아래 머리를 들이밀고
찬물로 씻어대니 더위가 훨씬 견디기 쉬웠습니다.
물론 거리에서나 버스 같은 데서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거나
코멘트를 듣는 건 괴로웠지만, 그런 건 웃어넘기면 그만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삭발을 했다고 시끄럽습니다만
삭발 그까짓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입니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는데 삭발한 정치인들은 머리 덕에
더위 견디기가 훨씬 나을 겁니다.
사소한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소인배 버릇...
이 버릇은 언제나 사라질까요?
이 버릇이 사라지면 삭발쇼나 단식쇼도 사라질 겁니다.
아래는 이 문제에 관한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고문의 칼럼입니다.
[여적]삭발과 정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의 신호들이 있다. 테러, 분신, 단식. 다른 방법으로는 자기 의사를 표출하거나 관철할 수 없다고 믿을 때 하는 극단적 행동들이다. 조선 시대에는 ‘지부복궐소(持斧伏闕訴)’가 있었다. 유생이 도끼를 앞에 두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것이다. 일제 때는 안중근 열사가 단지·혈서로 저항했다. 해방,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민주화된 이후 정치가 어느 정도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극단적인 자기표현은 줄었다.
물론 혈서·단식으로 자기 의사를 나타내는 방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한·미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할 때 성주군수와 군의회 의장이 혈서를 써 반대시위를 한 적이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지난해 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을 했다. 그러나 단식은 소수자, 약자의 항의 방식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삭발도 마찬가지다. 주로 노동자, 소수정당의 저항 수단이 됐다. 세종시 계획 수정 때 자유선진당, 정당 해산에 직면한 통합진보당 의원의 삭발이 좋은 예다.
그런 점에서 거대 정당이자 한국의 기득권을 대표하는 자유한국당의 의원 5명이 4당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항의한다며 삭발한 것은 눈에 띈다. 단식·삭발은 공개적 자기 학대다. 자해의 고통을 남들도 느끼도록 함으로써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나를 죽임으로써 너도 죽이려는, 죽기 살기의 정치이자, 선택을 강요하는, 압박 정치이다. 권위주의 시대면 몰라도 이게 2019년에 먹힐까?
그들로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할 절박성이 있겠지만 아쉽게도 공감은 없다. 시민이 그들의 부름에 응답하기는 했는데, 바로 한국당을 해산하라는, 170여만명의 청와대 청원이다. 시민과 한국당은 이처럼 자기표현 방식부터 다르다. 삭발은 이제 시대부적응자의 자기표현이 됐다. 아니면, 마약 검사를 회피하기 위한 제모처럼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아직도 민주주의적 제도·절차를 이용하는 법을 모른 채 삭발 정치하는 제1야당의 낡은 행태가, 분노 아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제발 피흘리지 말고, 굶주리지 말고, 제 머리 깎지 말고 정치하기 바란다. 한국 정치는 좀비영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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