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는 거리를 두고 살지만 시민의 도리가 있으니 모르쇠할 수는 없습니다.
시사와 거리를 두는 이유는 시사가 분노나 냉소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건강에 나쁘고 냉소는 인상에 나쁩니다.
그래도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읽는데
요즘 기사들 중엔 '격화소양'하는 기사가 많아
기사를 보다가 분노하거나 냉소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경향신문에서 격화소양 하지 않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경향신문 최초로 여성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민아 논설위원.
김 위원이 이런 글을 쓰는 한 경향신문 구독을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민아 칼럼]황교안씨, 그 이유를 모르세요?
김민아 논설위원
“구시대 유물을 왜 기어코 부활시키려는 겁니까?” “정말 그 이유를 모르세요?”
황교안 국무총리는 답답해했다. 2015년 10월7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그날 아침 보수신문 두 곳에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최종 결정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수 여론이 반대하는 국정화를 유보하고 ‘검정 강화’로 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마침 중견 언론인들의 총리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국정화 강행으로 선회한 배경에 질문이 집중됐다. 경향신문은 특히 국정화를 강력히 비판해온 터다. 그래서 비슷한 질문을 거듭했던 것 같다. 즉답을 피하던 총리가 결국 한마디 했다.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뜻이 확고한데 누가 무슨 수로 막겠어요?’가 생략됐음을 알았다. 내각을 통할하는 정권의 2인자가 당당하게 ‘무소신’을 피력하는 데 놀랐다.
황교안이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당대표 선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2022년 대선을 향해 시동을 건 모습이다. 그의 정치활동은 자유다. 다만 면면을 톺아볼 책임감은 느낀다. 입당 이후 공개적으로 밝힌 생각부터 살핀다(괄호 안은 질문이다).
15일 입당 기자회견 “(국정농단의 공범 아닌가) 지난 정부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국가적 시련으로 국민들이 심려를 갖게 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잘못됐다고 보나) 지금 꼭 필요한 건 국민통합이다.”
16일 조선일보 인터뷰 “(탄핵에 대해 어떤 생각인가) 박 전 대통령이 법적 조치를 받아 수용된 상황은 안타깝고 불편하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총리였는데 책임을 느끼지 않나) 용서를 구할 부분은 구하며 진정성 있게 나가겠다. 다만 박근혜 정부의 공에 대해서도 합당한 평가가 내려져야 미래로 갈 수 있다.”
발화자의 고뇌가 짐작된다. ‘국정농단 공범론’을 비켜가고 싶지만 ‘태극기 세력’의 표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막연하고 모호하다. 송구스럽다면서도 두루뭉술하고, 탄핵이 잘못이냐 묻는데 통합이 필요하다고 동문서답한다. 왜 정치를 하려는 건지, 한국당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건지, 통합 대상은 누구인지도 분명치 않다. “자신을 낮춰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조선일보 인터뷰)는 약속을 내놓긴 했다. 시민은 기억력이 좋다. 총리 시절 관용차를 탄 채 서울역 KTX 플랫폼에 진입하고, 노인복지관에 갔을 때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잡아놓는 바람에 노인들이 불편을 겪은 일을 잊지 않고 있다.
황교안은 박근혜 정권을 떠받친 핵심 조연이었다. 주역 최순실에야 못 미친다 해도, 그를 ‘아바타’나 ‘가게무샤(대역)’로만 치부하는 일은 실례다. 법무부 장관 시절,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막았다. 수사팀의 울타리이던 채동욱 검찰총장도 찍어냈다. 혼외자 의혹이 터진 후 채동욱을 만난 황교안은 “변호사가 먹고살 만큼 돈벌이는 된다”며 사직을 압박했다(한겨레 2017년 12월23일자). 그래도 사표를 내지 않자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 지시를 내렸다. 그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도 진두지휘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가 ‘유병언을 못 잡는 건 말이 안된다’고 질책하자 당일 검찰에 대책회의 개최를 지시했다. 회의 결과 유병언 수색에 군이 동원되고 반상회까지 열렸다.
남다른 충성심을 인정받아 총리에 올랐고, 총리가 된 뒤에는 더욱 충성스러워졌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가 발표된 직후 박근혜는 “불필요한 논쟁을 멈추라”는 지침만 내리고 출국했다. 그 이튿날 성주에 간 황교안은 달걀과 물병 세례를 받았다. 보수언론에 ‘외부세력론’을 꺼내들 명분을 준 셈이다.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정농단을 수사해온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 연장요청을 거부하며 끝까지 박근혜 편에 섰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황교안이 장관과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저지하려 노력한 흔적이 없다는 데 있다. 만약 최순실의 행각 자체를 몰랐다면 무능의 증거다. 홍준표는 “황교안은 박근혜가 탄핵될 때 정치적으로 같이 탄핵된 사람”(월간중앙 인터뷰)이라고 했다. 말에 사심이 섞여 있음을 알면서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황교안의 귀환은 박근혜의 귀환이다.
황교안은 “지금 대한민국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4년 전 들은 이야기를 돌려드린다. “정말 그(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모르세요?” 생략한 뒷부분도 알려드리겠다. ‘당신이 보고자 하는 미래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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