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한반도 평화와 일본(2018년 3월 22일)

divicom 2018. 3. 22. 09:30

오랜만에 한반도에 평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이어, 

어젠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한과 미국, 3자정상회담도 열릴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젊은이들 중엔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하지만, 그건 아마 통일에 수반될 경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오해 때문일 겁니다. 통일은 남북한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통일된 한반도는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에서 

지금 남북한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겁니다.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오래 대학교수로 평화운동가로 활동하시는 서승 선생은 제가 만나뵌 적 없지만 깊이 존경하는 분입니다. 그분은 형제들과 함께 한국에 유학왔다가 박정희 정부에 의해 재일동포 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분이 고문을 받을 때 행여 고통에 못 이겨 친구들의 이름을 말할까봐 난로를 껴안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얘길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일로 그분은 화상투성이가 되었으나 그때부터 그분은 제게 '신'이 

되었습니다. 이 블로그에 있는 제 프로필의 '존경하는 사람' 이름에도 그분의 함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서승 선생이 요즘 경향신문에 '동서남북인의 평화 찾기'라는 문패의 칼럼을 쓰고 계신데, 마침 한반도 상황에 관한 글을 쓰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동서남북인의 평화 찾기]‘신뢰와 상생’ 한반도 평화의 길

서승 평화운동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다. 전쟁으로 치달았던 한반도 정세가 급전하여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까지 실현하게 되었으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신호탄으로 남북이 평화올림픽의 감동을 연출해냈다. 그것이 남북대화로 이어지고, 2월5일, 특사단이 방북하여 뜻밖의 큰 성과를 올렸다. 그 성과는 4월 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남북정상 간 핫라인 개설, 체제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포기한다는 김 위원장의 표명, 북·미대화 용의 표명, 핵·미사일 실험 중단 등이다.

주목할 일은 김 위원장이 먼저 정상회담을 남쪽에서 하자고 하고, 4월의 한·미 군사훈련을 “이해한다”고 한 대목이다. 이른바 대화를 순조롭게 끌어가기 위한 ‘선제양보’다. 이것으로 김 위원장은 ‘담대하고 솔직하다’는 평을 얻게 된다. 김 위원장의 거리낌 없는 행보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의 진솔하고 상쾌한 행보를 방불케 한다. 이 성공은 목숨 걸고 평화를 지켜내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큰 구실을 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 실현까지는 멀고도 험난하다. 그중에서도 일본 문제가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미국의 종속변수로 독자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호전시킬 수는 없으나 방해는 할 수 있다. 그동안 아베는 전쟁불사의 가장 강도 높은 대북압박론으로 일관하여 평창 올림픽에서도 북한의 ‘미소외교’에 속지 말고 올림픽 후에 바로 한·미 훈련을 실시하도록 문 대통령에게 ‘충고’했다. 그는 특사단이 트럼프에게 방북 결과보고를 하기 위해 3월9일에 방미한다고 하자, 트럼프에게 전화하고, 북한이 대화로 나온 것은 트럼프와 아베의 ‘제재와 고도의 압박정책’의 성과라고 자찬하면서, 북한에 시간을 주지 말고 최대의 압력을 계속하자고 주장하고, 4월 초에 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북·미대화에 대못을 박으려고 획책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뜻밖에 즉석에서 북의 제안을 받아들여 5월 내 북·미 정상회담을 한다고 공표를 해버리니, 아베의 계산이 빗나가고, ‘재팬 패싱’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3월16일 아베는 자세를 180도 바꾸고, 문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라고 치켜세웠으나,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한·미·일의 공조 강화를 주문하고, 남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해줄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한·중·일 정상회담 조기 개최, 한·일 셔틀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등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의 입지와 지분을 요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부정한 학원지원 사건인 ‘모리토모학원’ 문제에서도 허위와 기만으로 일관해 왔지만, 외교에서도 민족차별의식을 밑에 깔고 철저히 냉소적인 자세로 대해왔다. 지금 압도적인 화해, 대화 분위기를 거역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척하지만, 그의 심중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론과 납치 문제를 최대한 악용하면서 일본의 군사화, 우경화, 헌법개악 추진으로 재미 본 기왕의 상황을 그리워하고 기회만 있으면 한반도 화해·협력에 찬물을 끼얹으려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비뚤어진 냉소적인 시각이 아베 집권 8년 동안에 문 대통령을 ‘친북·반일’이라고 폄하하게끔 많은 청소년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월9일 평창에서 문 대통령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 데에 대해, NHK의 여론조사에서는 일본 국민의 72%(크게 평가 34%, 어느 정도 평가 38%)가 아베를 지지했고, 남북대화를 65%(전혀 평가 안 함 28%, 별로 평가 안 함 37%)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는 정권만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달의 졸고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일제의 그림자’를 일본 우익은 내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일본의 탓’이라고 주장했다고 왜곡하면서 바로 번역하여 매체에 뿌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읽지 않는 칼럼을 바로 번역·살포하는 일본 우익의 부지런함에 감탄한다. 이걸 받아 2월26일 유신회 출신의 자민당 스기타(杉田水脈) 의원이 중의원의 예산위원회에서 “이런 반일적인 학자에게 문부과학성의 과학연구비 수억원을 지급하고 있다”고 추궁했다. 그 소식이 인터넷에서 확산되어 우익들이 전차처럼 생긴 새까만 선전차(街宣車)를 몰고 내가 재직한 리쓰메이칸 대학에 와서 큰소리로 “서승을 끌어내라!”고 난리를 쳤다. 게다가 대학에 밤낮 없이 협박전화를 하는 등 업무방해를 계속했다.

이에 대학 측은 내게 대학과 모든 관계를 끊으라고 해왔다. 나는 이미 7년 전에 퇴직하고, 지난 1월에 마지막 강의를 마쳤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전 리쓰메이칸 대학 같으면 ‘대학의 자치,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내걸고 우익의 부당한 공갈을 단호히 거부했을 텐데, 우익의 기세에 찔려 꼬리를 내리다니….

우선 내가 학술지원금을 받은 것은 거의 20년 전의 일이며, 연구주제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아니라 ‘한국의 민주발전에 관한 법·정치적 연구’였으며, 그것도 공동연구를 한 교수 10여명을 대표해 받은 것이었다. 우익정치가가 연구주제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학문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게다가 지난달 내 글은 일본의 책임을 물었다기보다, 우리 안에 있는 일제 잔재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의 만행으로)… 제주 4·3사건이나 거창 학살사건, 백선엽군의 지리산 일대에 대한 잔인무도한 ‘토벌’ 작전이 떠올랐다. 거기서 작전지휘한 장성들은 일제의 군사교육을 받아 만주에서 전략마을을 만들어 항일운동을 소탕한… 자들이다. … 우리는 박정희와 학살 군사지휘관들의 책임을 물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우리 속의 일제 잔재 청산을 완수해야만 베트남인 학살사건에 대한 진정한 과거청산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으며, 일본 우익에도 일본의 과거 청산을 촉구한 것이다.

남북 화해·협력, 동아시아의 평화실현을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기만을 기본으로 하는 비비 꼬인 국제정치의 술수를 가지고서는 안된다. 정정당당하고 솔직하고 서로 신뢰하는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같은 겨레끼리 서로가 상생·번영할 수 있는 길을 지긋한 사랑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문 대통령에게 크게 기대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212104025&code=990100#csidxc51df6cd35c8e71a7ac2b9327cff70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