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패럴림픽, 아카데미상, 포용 특약(2018년 3월 7일)

divicom 2018. 3. 7. 10:00

동계올림픽이 끝난 강원도 평창에서 내일부터 18일까지 평창 패럴림픽이 열립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많은 분들이 평창에 가서 

의지로 장애를 이겨내고 있는 선수들을 응원했으면 좋겠습니다.

비장애인 올림픽 때보다 더 많은 관중이 스타디움을 메우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 각급 학교의 학생들이 패럴림픽에 가서 보고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결핍이 인간의 잠재력을 어떻게 발현시키는지,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들의 

상대적으로 편안한 일상이 어떻게 그들을 나태하게 하고 인생을 낭비하게 하는지...

비장애인 학생들의 수업에 일정 비율의 장애 관련 체험을 포함시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초고도근시로 일종의 시력장애를 가진데다, 잘 넘어지고 넘어질 때마다 뼈나 인대를 다쳐

깁스를 너댓 번이나 하며 꽤 자주 장애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곧 끝날 '장애 체험'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장애'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체험'을 통해서라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3월 4일 로스엔젤러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올해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는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Frances McDormand)의 수상 소감이 특히 주목을 끌었습니다.

맥도먼드는 영화 '쓰리 빌보드(원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에서의 연기로 주연상을

받았는데, 수상 소감에서 '포용 특약(inclusion rider)'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포용 특약'은 미국 남가주대학의 스테이시 스미스(Stacy Smith) 박사가 2016년에 TED강연에서 한 말로,

출연진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영화산업을 변화시키기 위해 출연 계약에 일정 비율의 여성이나 유색 인종 등을

포함시키자는 제안이라고 합니다.


한 사회의 다수가 불의와 불공정에 침묵할 때 그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포용 특약'과 같은 강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선진국클럽이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유난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 사회... 이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포옹 특약'과 같은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오늘 한국일보의 '지평선' 칼럼에 실린 김범수 논설위원의 관련 글입니다.

오늘 한국일보 2면에는 한국의 특사방문단이 북한에 가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건배하고, 

그의 배웅을 받는 사진이 실렸는데, 그 사진 설명이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일보를 보면서 '아, 아무래도 안되겠다, 그만 봐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오늘 뒤바뀐 사진 설명을 보니 또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김범수 논설위원의 글이 없었으면 바로 구독을 중단했을 겁니다. 


올해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은 ‘미투(Me Too)’와 ‘다양성’에 대한 공감으로 가득했다.

시상식 참석자들은 너도나도 성폭력 반대 캠페인에 동참한다는 ‘타임스 업’(TIME’S UPㆍ성폭력 성차별 시대는 끝났다) 배지를 달고 나타나 관련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감독상 작품상 등 4관왕의 영예를 안은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언어장애가 있는 청소부와 수중 괴생명체의 사랑을 통해 소수자 차별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멕시코 출신의 이민자였다.

▦ 수상 소감으로 특별히 주목받은 사람은 여우 주연상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였다.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딸의 범인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어머니를 연기한 맥도먼드는 수상 후보에 오른 여성 배우, 제작자, 프로듀서, 작가, 촬영감독, 작곡가, 의상 디자이너들을 일어서라고 한 뒤 “이들 모두가 말해야 하는 이야기와 프로젝트를 갖고 있다”며 그들에게 자금 지원을 호소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 밤 마지막으로 두 단어를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inclusion rider’”.

▦ 생소한 이 말은 남가주대의 스테이시 스미스 박사가 2016년 TED 강연에서 제창했다고 한다. 스미스는 그해 미국 내 흥행 100위까지 영화를 조사했더니 대사 있는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이 하나도 없는 작품이 48개, 대사 있는 아시아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70개, 장애여성이 나오지 않는 작품이 84개, 대사 있는 성소수자(LGBT)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93개였다며 영화 캐스팅이 현실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출연 계약 때 같이 연기할 배우와 제작진에 여성이나 유색 인종 등을 일정 비율로 포함시키도록 요구하는 ‘포용 특약(inclusion rider)’을 넣어 영화 제작의 다양성을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 문제의식은 다르지만 ‘다양성’과 ‘포용’은 글로벌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문화로도 확산되고 있다. CEO나 CFO처럼 다양성과 포용을 책임지는 CDIO(Chief Diversity Inclusion Officer)를 두는 기업이 많아졌고 다양성이 높을수록 혁신적 상품을 개발할 가능성이 커 투자 가치가 있다며 D&I 지수까지 개발돼 있다. 경제도 문화도 차별 극복과 다양성 존중이 대세인 것 같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