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시간 당 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게 하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뭘 먹고 사느냐는 반박도 적지 않습니다. 이틀 전 한국일보에서 이 문제를 다룬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늦었지만
그 글을 옮겨둡니다. 한국일보 이영태 정책사회부장의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hankookilbo.com/v/70dd3bf53cc945d3a42c1f8463bebbcb
김밥집 사장님과 서빙 아주머니
근무요일: 월~일(주7일)
근무시간: 15시~02시
급여: 월급 200만원 (협의 가능). 경기 안산시 한 24시간 김밥집의 채용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 11시간, 하루도 쉬지 못한 채 한 달을 꼬박 일해서 세금을 떼기 전에 받는 돈이 200만원이다.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한달 30.5일, 335.5시간을 평균적으로 근무할 테니 시급은 5,961원이다. 올해 최저임금(6,470원)을 턱없이 밑돈다. (저녁 식사시간을 빼면 정당한 임금이라고 주장하겠으나, 그들에게 하루 1시간 여유로운 식사시간이 보장될 리는 만무하니) 당연히 불법이다. 퇴근 시간은 새벽 2시다. 대중교통은 모두 끊겼을 시각이다. 식당 어딘가에 새벽 첫 차가 다닐 때까지 눈을 붙일 수 있는 쪽방이라도 있긴 한 걸까.
요즘 김밥집 사장님들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불황에 근근이 버티는데 최저임금이 시급 1만원으로 오른다니 김밥집 사장님 같은 영세업자들은 다 죽게 생겼다는 것이다. 보수 언론들이 훨씬 더 적극적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자들의 영역을 침범할 때는 눈 하나 꿈쩍 않던 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영세업자들의 대변자가 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찌됐건 김밥집 사장님들의 아우성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매출도, 다른 비용도 다 동일한데 인건비가 갑자기 확 늘어나면 수익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도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하루 2,000명이 넘는 마당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알바생(아르바이트생)보다 더 적게 버는 사장님을 양산할 거라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김밥집 사장님들이 종업원들에게 지급하는 지금의 최저임금(안산의 그 김밥집은 이마저도 지키지 않고 있지만)이 과연 노동에 대한 적정한 대가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종종 김밥집을 다녀봐서 잘 알지만, 홀 서빙 아주머니들의 일상은 고달프다. 밀려드는 손님 주문 받아야 하고 음식을 날라야 하고 빈 그릇을 치워야 한다. 주방 일손이 딸리면 설거지도 도와야 한다. 커피숍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 알바생도, 졸음과 싸워가며 야간 근무를 하는 편의점 직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시급 6,470원,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했을 때 받는 월 급여는 120만원, 주휴수당을 포함해도 140만원 안쪽이다. 한 가정의 최저생계를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하루 11시간, 12시간, 휴일 없는 주 7일 근무가 돼도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있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누가 지금의 최저임금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김밥집 사장님들의 아우성은, 다시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법의 보호’ 아래 종업원들에게 적절한 근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생계를 유지해왔다는 얘기다.
가진 자의 착취만이 아니라, 약자의 약자에 대한 착취 역시 정당화될 순 없다. 노동계의 요구처럼 주변의 충격은 안중에 없이 당장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는 것이 답이 아니듯, 무작정 최저임금을 억눌러 영세업자들이 연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또한 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진 자들이나 정부가 영세업자들로부터 과도하게 거둬들이는 비용(임대료든 가맹점수수료든 세금이든)을 줄여 최저임금을 올릴 여지를 넓히는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것, 그래서 김밥집 사장님들이 착취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어렵지만 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김밥집 사장님들의 어려움을 이유로 생계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있는 서빙 아주머니나 알바생들의 희생을 계속해서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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