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의 임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대구, 경북 지역이라는 사실,
그를 가장 열렬히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자유한국당이라는 사실...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며칠 전 꽤 보수적 성향의 여자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강경화 씨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강경화 씨가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의 임명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비판했습니다.
어쩜 대구, 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들은 박근혜 씨처럼 남에게 의존하는 '여성',
그래서 자기네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성'은 좋아해도 강경화 씨처럼 독립적인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마침 오늘 한국일보의 이유식 논설고문이 강경화 씨와 자유한국당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한 칼럼을 썼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중도'를 표방하며 비틀거리곤 하는 한국일보, 구독을 그만둘까 하다가도 그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글 때문이겠지요.
[지평선] 강경화의 존재감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 1. 임명 강행→저지실패에 열받은 야당 사사건건 정부 발목잡기 계속 2. 임명 철회→저지성공에 탄력받은 야당 더욱 힘내 정부 발목잡기 계속>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강 후보자 임명을 밀어붙이면 협치고 뭐고 끝장"이라고 추경예산까지 들먹이며 협박하지만, 애초부터 야당은 협치할 마음이 없다는 얘기다. 일반인들의 정치 독해력은 이런 수준이다.
▦ 어제 한 유력 언론은 "대통령은 자신이 지명한 후보자가 모두 임명돼야 한다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을 원한다면 인사부터 협치하라는 논리를 폈다. 길을 잘못 선택했으니 대를 위해 소를 버리는 이른바 '사석(捨石) 작전'을 펴라는 뜻일 게다. 그 사석이 강 후보자인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러면 길이 열릴까. 대선 패배 후 리더십 혼미에 빠진 야 3당은 지금 '존재감'에 목매달고 있다. 사람이든 예산이든 끊임없이 먹잇감을 찾아 "우리도 있다"를 증명해야 할 처지다.
▦ 문제는 강짜를 놓거나 몽니를 부려야 존재감이 드러난다고 믿는 낡은 인식이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강 후보자 임명 찬성 의견은 62.1%로, 반대 30.4%의 두배를 넘었다.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라는 의견(56.1%)도 임명 철회(34.2%) 의견을 압도했다. 이달 5~9일 실시한 조사 결과다. 이후 전직 외교부 장관 10명까지 나서 '창의적 외교 역량과 자질'이라는 찬사로 강 후보자를 지지했다. 아무래도 한국당 등은 지지선언에 합류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사로 몰려와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모양이다.
▦ 그런데 묘하다. 야당이 "연안여객선 선장은 몰라도 항공모함 함장 감은 아니다"며 강 후보자의 흠집을 들출수록 그의 존재감은 커지고 야당의 존재감은 작아지니 말이다. 존재감의 뜻 '사람, 사물 따위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을 적용하면, 있다고 외칠수록 없어지는 역설적 상황이다. 세가 약하거나 때가 아니면 쉬어가라는 병법을 외면한 탓이다. 어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청와대는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강경화 후보자 임명도 강행할 태세다. '강경화를 옴팡지게 부려먹자'는 한비야의 주장에 동조하는 여론이 많음을 눈치챈 것 같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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