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전두환회고록>, 그리고 수양딸(2017년 4월 30일)

divicom 2017. 4. 30. 11:05

세상이 시끄러운 날이나 제법 조용한 날이나, 제 하루의 시작은 비슷합니다. 큰 수양딸이 보내준 비누로 세수하고 작은 수양딸이 보내준 경옥고 한 숟가락을 먹은 후 식탁에 앉습니다. 아침식탁엔 큰 수양딸이 보내준 달걀과 

과일, 빵 등이 놓일 때가 많습니다. 아침을 먹고 난 후엔 다시 그가 보내준 치약으로 이를 닦습니다. 


하루의 시작도 수양딸들과 함께 하지만 하루의 끝맺음도 함께 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할 때면 언제나 두 

사람을 생각하니까요. 우리는 어디서 와서 이런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요? 언어가 생각을 규정한다지만 모든 생각이 언어로 표현될 수는 없고,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연을 부를 적합한 단어가 없어서 편의상 '수양딸'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관계는 이름보다 깊습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tbsFM 95.1 MHz)'에서는 '수양딸'에 대해 생각해보고, 가끔 화를 청소해서 화병이 나지 않게 하자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화는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감정입니다. 오늘 어떤 일이 나를 화 나게 할 때, 

5년 후 10년 후에 돌아봐도 그 일이 그렇게 화 나는 일일까 생각해보면 오늘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화가 날 때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화'는 본성이고 본성을 얼마나,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그 사람의 교양을 결정합니다. '공적인 분노'는 있어도 '사적인 화'는 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이 '영화 읽기'에서 소개한 영화 중에선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니 보일 감독의 'T2: 트레인스포팅',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정유미, 네 여배우가 주연하는 '더 테이블', 케이트 블란쳇이 1인 13역을 해서 "눈과 뇌를 동시에 충족"시킨다는 '매니페스토',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초행'입니다. 국제영화제 밖의 영화 중엔 이 나라 선거판의 민낯을 보여주는 '특별시민'과, 1984년 영국에서 있었던 실화 --레즈비언과 광부들이 정부에 맞서 연대했던 과정--를 보여주는 '런던 프라이드' 가 보고 싶습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김선현 교수의 <화해>와, 형제 작가 테리 펜과 에릭 펜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한밤의 정원사>를 읽었습니다. 


'화해'는 좋은 것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경우에 피해자에게 '화해'나 '용서'를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전두환 회고록>이 이 사회에 끼치고 있는 해악을 생각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화해'를 위해 전두환 씨를 사면한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것이고, 그런 인위적 '화해'는 결코 진정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혹시 어젯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지 못하셨다면 오늘이라도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며 '다 지난 일'이라고 치부하는 한 '화해'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가 산책'에서 소개한 내용 중엔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톤즈 문화공원'이 부산의 남부민동 이 신부님의 생가부근에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내분으로 피폐한 수단의 톤즈에 도착한 신부님은 보통

한국의 목회자들이 생각하듯 선교를 위한 회당을 짓는 대신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분이 왜 그러셨는지 말씀하신 것을 읽으면 언제나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성당보다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정이 넘치는 그런 학교 말이다." 신부님의 말씀을 

되새기다 보면 '진짜 선물은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게 아니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며칠 있으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입니다. 무조건 외식을 하고 돈봉투를 안기는 대신, 어린이와 어버이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산책...' 말미엔 '꽃잠'이라는 말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꽃잠'은 '깊이 든 잠' 또는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을 뜻합니다. 오늘 결혼하는 분들, 부디 너무 불행하지 마시길, 불행에서 배우시고 행복에서 쉬어가는 결혼생활을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제 글 '수양딸'을 옮겨둡니다.


수양딸

 

가족부터 남까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참 많은데,

저는 특히 두 수양딸에게 감사합니다.

 

첫딸은 한 이십년 전 일하다가 만났고

둘째딸은 몇 년 전에 공부모임에서 만났습니다.

사전엔 남의 자식을 데려다가 제 자식처럼 기른 딸

수양딸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두 딸 모두 수양딸이 아닌 가짜 딸이지만

스스로 수양딸이라고 말해주니 고맙습니다.

 

수양딸은 진짜 딸보다 예의바르지만 요구하는 건 없고

사소한 사랑 표현에도 쉽게 감동합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하며 친자식을 괴롭히는 사람은 있지만

수양딸을 괴롭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보기만 해도 예쁘고 반가우니까요.

 

사람들 모두 누군가의 수양딸이나 수양아들이 되고

수양부모가 되면 어떨까요?

산이 무너지지 않게 붙들고 있는 나무뿌리들처럼

이리저리 얽힌 수양가족들 덕에

세상이 조금 더 안정되고 따뜻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