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안철수 선거 벽보와 응암동 빵집 (2017년 4월 18일)

divicom 2017. 4. 18. 20:23

은평구 응암동에 유명한 빵집이 있습니다. 원래는 지금의 절반 가량 크기였지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된 후 손님이 크게 늘며 크기도 커졌습니다. 이 집이 옆 가게까지 흡수해 커질 때는 염려가 되었습니다. 보통 작게 시작한 사업이 커지면 주인이 처음에 가졌던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그와 함께 그 집에서 파는 물건도 달라지는 걸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빵집이 커지더니 빵 굽는 공간이 커지고 직원도 여럿 생겼습니다. 빵집이 커진 후 처음 산 빵의 맛이 전과 다르지 않아 안도한 단골이 저 하나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여전히 빵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는 거겠지요. 


그런데 이제 이 빵집에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그곳에서 본 광경이 잊히지 않아서입니다. 낮 1시쯤 그곳에 들렀을 때 직원 한 사람이 빵 만드는 곳에서 이를 닦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끔 칫솔질을 쉬며, 반죽 중인 다른 직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또 칫솔질을 했습니다. 그가 이편을 향해 서 있으니 빵을 기다리느라 앉아 있던 저는 줄곧 그가 이 닦고 말하는 광경을 보아야 했습니다. 미리 빵 값을 계산하고 기다린 게 아니었다면 그냥 일어서서 나왔을 겁니다. 빵을 반죽하는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닦는 사람과, 그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곳에서 그 사람들이 만드는 빵... 아무리 맛이 좋아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꼭 지금 우리나라의 축소판 같았습니다.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곳이 이 나라이니까요.


오늘 아침 국민의당 대통령후보인 안철수 씨의 선거 벽보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니 그날 그 빵집에서 본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디자인전문가인 국회의원 손혜원 씨의 말에 따르면, 선거 포스터의 안 후보 사진은 그의 모습을 그대로 찍은 것이 아니라 몸의 좌우를 바꿔 이미지를 왜곡한 사진이라는 겁니다. 


안 후보의 포스터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제석광고연구소 이제석 대표는 '포커스뉴스'와의 통화에서 '"내가 직접 만든 게 아니다. 나는 자문만 했다"면서 "국민의당 사람들이 아무래도 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2011년 박원순 씨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해 서울시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던 안씨는 언제부턴가 실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작년 5월, 19세의 젊은이가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졌을 때 안씨가 했던 말입니다. 당시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였던 그는 트위터에 그 젊은이가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안겨주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조금만 더 여유가 있'어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 또 다른 '여유 없는' 젊은이가 그 일을 했겠지요. 안철수 씨는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노동조건을 문제로 지적하고 해결하려 하는 대신, 그 사건을 한 개인의 비극으로 이해했던 것이고, 그러한 자신의 태도가 잘못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그런 말을 했던 겁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태도는 최근에도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 부인이 자신의 국회의원 사무실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사적인 일을 시킨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을 때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기 부인이 사과했으니 된 것 아니냐는 투로 말했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나는 '인간 안철수'의 모습은 2011년의 '안철수'와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어쩌면 그때의 우리는 그를 몰랐고 이제야 그의 됨됨이를 '발견'하는 중일지 모릅니다. 마치 제가 응암동 빵집을 '재발견' 하는 것처럼. 


안철수 씨와 빵집 주인은 불쾌하고 억울할지 모르나 정말 불쾌하고 억울한 사람은 우리입니다. 그들의 진짜 모습을 모른 채 그들을 진짜로 대접했으니까요. 빵집은 그곳 말고도 많지만 대통령은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직위입니다.

안철수 후보의 포스터 앞에서, 상식과 맞지 않는 언행을 하는 사람, 대다수 국민의 삶과 유리된 삶을 사는 사람은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는 유권자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안철수 씨의 포스터와 관련된 서울신문 기사입니다. 맨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문제의 포스터를 볼 수 있습니다.


 

안철수 포스터 본 손혜원 “국민 속인 것” 쓴소리

입력 : 2017-04-18 07:57 ㅣ 수정 : 2017-04-18 08:40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디자인 전략을 맡고 있는 손혜원 의원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포스터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손 의원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쟁을 넘어 당을 초월하여 디자이너로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안철수 후보 벽보 디자인을 보고 사실 좀 놀랐다. 범상치 않았고 선수가 했구나…생각했다”고 글을 남겼다.

그러면서 “가로 면을 꽉 채우며 ‘안철수’를 강조한 것, 전면을 사진 속 초록 배경을 활용, 그리고 강조한 것, 자신감 충만한 젊은 디자이너 감각 같았다. 당명을 넣지 않은 것도 어깨띠에 ‘국민’이 있으니 그럴 수 있다. 만세를 부른 사진도 유별나다. 이런 아이디어를 채택한 안후보가 다시 보였다”고 적었다.

이어 “그러나 처음 벽보를 보는 순간부터 나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진 속 얼굴은 안철수 후보와 좀 달랐다. 과도한 메이컵 탓인가 자세히 봤지만 그것도 아닌 듯했다. 더 자세히 봤다. 볼수록 이상했다. 내가 맞았다. 목을 중심으로 몸을 둘로 나눠 얼굴과 몸이 다른 사진일 뿐만 아니라. 얼굴 좌우가 바뀌었다. 평소의 안후보 같지 않고 어색했던 이유다. 인간의 얼굴은 거의 비대칭이다. 그래서 좌우를 바꾸면 어딘가 이상해진다”고 지적했다.

손 의원은 “무슨 욕심이었을까. 더 잘 생겨보이게 하려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에게도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가 있다. 이 경우, 디자이너의 의욕이 과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의 목을 잘라 다른 얼굴을 붙이고 게다가 좌우를 반전시켜 이미지를 왜곡했다. 이건 아니다. 벽보는 후보를 판단하는 중요한 매체다. 후보의 목에 손을 댄 사람이나 그렇게 하도록 용납한 사람이나 국민을 속인 것이다. 브랜드 마케팅의 철칙. 대중은 가짜에 감동하지 않는다. 가짜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손 의원은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을 전공한 디자인 전문가다. 손 의원이 개발한 브랜드로는 소주 ‘처음처럼’ ‘참이슬’, 아파트 브랜드 ‘힐스테이트’, 커피 전문점 브랜드 ‘엔젤리너스’ 등이 있다.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418500002&wlog_sub=svt_026#csidx01be154ed2f0321af69ccb94c0eea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