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전두환 회고록 쿠데타(2017년 4월 7일)

divicom 2017. 4. 7. 12:17

오늘은 '신문의 날'입니다. 대부분의 신문기자들조차 기억하지 못하겠지만요. 


제가 신문기자를 하던 70년대와 80년대에는 일년에 신문 기자들이 쉴 수 있는 날은 '신문의 날' 하루였습니다. 

주말도 없이 뉴스를 좇다가 그날만 쉬었고, 그날은 대개 평일이었습니다. 모처럼 덕수궁이나 경복궁 뜰을 거닐다 

보면 저만치 다른 기자들이 보이곤 했습니다. 


제한된 언론 자유 안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느라 힘겨운 나날이었지만 신문에 대한 시민들의 사랑과 기대, 믿음이 

지금보다 커서 지낼 만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신문은 시드는 매체가 됐고 기자들 중엔 여타 월급생활자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기자는 적고, 눈길을 끄는 제목으로 '조회 수'를 

늘리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범죄를 미화 또는 정당화하는 시도를 해 국민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부인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논조의 책을 냈다니, 책을 몇 권 낸 적이 있는 제 얼굴이 붉어집니다. 두 사람의 책을 사는 것은 그들의 주머니에 땀 흘려 번 돈을 넣어주는 것이니 살 수 없고, 마침 경향신문 

박구재 논설위원이 전씨의 책에 대한 글을 썼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신문의 날'에 아직 신문을 구독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켜준 박 위원에게 감사합니다.  


[여적]회고록 쿠데타

박구재 논설위원

회고록과 자서전은 다르다. 자서전은 개인의 삶에 대한 주관적 기록이지만 회고록은 역사적 사건의 내막과 진상을 담아낸 공적 기록물이다. 회고록을 “역사 법정의 최후진술과 같다”고 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2006년 타계한 극작가 차범석은 “회고록은 자신을 처형대에 올려놓을 용기와 겸손이 있어야 쓸 수 있다”고 했다. 거짓의 가면을 벗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회고록을 쓸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회고록 <한국 소극장 연극사>을 펴내며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집필했다”고 밝혔다.

장 자크 루소는 <고백록>에서 “내 모든 것을 발가벗겨 세상 사람들에게 전시하려 한다”고 적었다. 실제로 루소는 젊은 시절 가정교사로 일하며 제자의 보석 머리핀을 훔치고, 귀족 부인과 염문을 뿌린 일 등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리처드 닉스 전 미국 대통령은 1978년 펴낸 회고록으로 실추된 명예를 다소나마 회복했다. 닉슨은 회고록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말과 주요 정책의 결정과정 등을 객관적으로 서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 작품에 비견되는 회고록도 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미국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회고록은 청교도 간증서로 유명하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29년 만에 펴낸 세 권짜리 <전두환 회고록>은 내란죄 수괴이자 5·18 학살 책임자의 역사반란서다. 회고록이라기보다는 역사 쿠데타를 꿈꾸는 자가 쓴 ‘인면수심의 기록’에 가깝다. 그는 12·12군사반란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 등 역사적 사실을 모두 부정했다. 그러면서 “나는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 “발포명령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5·18기념재단이 명예훼손죄로 그를 다시 법정에 세우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고 한다. ‘역사법정의 최후진술’과도 같은 회고록에서까지 반역사적 망언을 일삼은 그는 아직 죗값을 다 치르지 않은 게 틀림없다. 그는 회고록 3권 <황야에 서다> 말미에 “나로 인해 생겨난 증오와 분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관용과 진실에 대한 믿음이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썼다. 역사쿠데타를 꿈꾸는 자에게 베풀 관용이란 없는 법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062041035&code=990201#csidx3333d25dcf6c47782b61a043b2b5d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