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4월, 동백, 봄볕(2017년 4월 2일)

divicom 2017. 4. 2. 11:49

4월 하면 가장 먼저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노래했던 신동엽 시인 생각이 납니다. 4월은 흙을 갈아엎어 씨를 

뿌리는 달이지만, 1960년 4월 19일의 시민혁명 후엔 잘못된 세상을 갈아엎는 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숫자로 문장을 시작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4월'이 아닌 '사월'로 쓰고 싶지만 그냥 '4월'로 씁니다. '사월' 하면 '4월'보다 서정적인 느낌이 드는데, 아직 우리의 '4월'은 '서정의 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정적인 가곡 '사월의 노래' 같은 것을 쓸 때는 '4월'이 아닌 '사월'이라고 써야겠지요.


오늘 아침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tbs FM95.1 MHz)'는 선운사의 동백꽃을 노래한 송창식 씨의 '선운사'로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선운사의 동백은 다른 곳의 동백보다 늦게 피어 늦게 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서둘러 피었던 동백이 대개 지고 난 후인 3월 말에나 피는 동백, 느림도 혁명이 될 수 있으면 선운사 동백꽃은 다른 동백꽃들보다 혁명적입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이 '영화 읽기'에서 소개한 영화 중에서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재일한국인 3세 이상일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 '분노'가 보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이 원작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인간의 '믿음'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소피의 선택'을 보고, 그 원작을 사 읽었듯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도 읽고 싶습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는 '책방 산책'에서 임철우 씨의 소설 <연대기, 괴물>과, 마이클 킨슬리의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언젠가 임철우 씨의 '붉은 방'을 읽고 며칠씩 악몽을 꾸던 생각이 납니다. 

이 가벼운 시대에 임철우 씨와 같은 작가가 있어 얼마나 반가운지요. 이번 소설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사건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현대사를 한 사람의 연대기 형식으로 그린다고 합니다.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마이클 킨슬리(Michael Kinsley)는 미국의 언론인으로 주로 정치에 관한 글을 쓰고 논평을 해왔습니다. 신문과 

방송 전 분야에서 활약했고 2014년부터는 <배니티 페어(Vanity Fair)> 잡지의 편집자와 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는데, 놀라운 건 킨슬리가 20여년 동안 파킨슨병과 투병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마흔두 살에 이 병에 걸렸는데, 대개 나이든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 병의 증세는 노화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킨슬리는 자신이 파킨슨병으로 인해 

겪는 증세와 마음을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Old Age: A Beginner's Guide)>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문화가 산책' 시간에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은하철도 999' 탄생 40주년 기념 전시회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홍성담 씨의 '세월오월' 전시를 소개했습니다. '은하철도 999' 전시는 5월 1일까지, 

'세월오월'은 5월 11일까지 계속됩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우리말은 '나비눈'이었습니다. 나비눈은 '못마땅해서 눈알을 굴려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눈짓'을 

뜻합니다. 눈도 얼굴도 생긴 게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표정이겠지요. 사랑과 웃음이 담긴 눈은 모양에 

상관 없이 아름답습니다. 


오늘 들려드린 곡의 명단은 tbs 홈페이지(tbs.seoul.kr)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 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 드린 '봄볕'을 옮겨둡니다. 최근 독일의 과학자들이 세계 최대의 인공태양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지름이 지구의 109배나 되는 진짜 태양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요. 봄 햇살을 받으면 마음까지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봄볕

 

겨울 해는 다정해도 추위를 쫓진 못하고

여름 해는 사나운 선생님 같아 피하고 싶지만

봄볕은 온화하고 지혜로운 부모처럼 만물을 키워줍니다.

 

지구에서 평균 15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태양,

표면의 온도가 6천도이고 내부 온도는 그보다 수천 배 높으니

이렇게 먼 곳까지 온기를 보낼 수 있겠지요?

 

지구에는 지각이라는 껍질이 있지만

태양은 거대한 기체 덩어리라고 하는데요,

태양이 지구까지 온기를 보낼 수 있는 것도

껍질 없는 기체 공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봄볕처럼 만물을 키울 순 없겠지만

우리 모두 아주 잠깐씩 누군가의 태양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 덕에 춥지 않다,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들으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온기로 채우고 껍질부터 벗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