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봄날은 간다'와 '청년 동전'(2017년 3월 26일)

divicom 2017. 3. 26. 11:36

삼월인가 했더니 어느덧 마지막 일요일입니다. 삼년 만에 몸을 드러낸 세월호를 보니 시시때때로 눈이 젖습니다. 

제가 이럴 때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떨지... 뉴스를 보면서는 밥을 먹을 수 없는 나날입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tbs FM95.1MHz)'에서는 봄과 젊은이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한영애 씨의 '볼날은 간다'와 고 차중락 씨의 '사랑의 종말'을 비롯한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었습니다.

'봄날은 간다'는 1954년 6.25전쟁이 휴전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온 노래인데, 백설희 씨가 처음 부른 후

수많은 가수들이 불렀습니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연분홍 치마, 산제비, 성황당, 앙가슴, 신작로, 청노새, 역마차' 등 요즘 듣기 힘든 단어들이 대상을 알 수 없는 그리움을 자아냅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 하는 '영화 읽기' 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소개해드렸는데, 그 중에서도 실화를 

영화로 만든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꼭 보시길 권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숨겨진 사람들'쯤 되겠지요.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1960년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들이 모인다는 NASA(항공우주국)에서 세 사람의 흑인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최근 몇년 간 본 영화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딸이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교육적 목적으로 보지 말고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 에서는 정세진 씨의 <식탐일기>와 윌리엄 맥어스킬

(William MacAskill)의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읽었습니다. <냉정한 이타주의자>의 원제는 

<Doing Good Better>입니다. 말 그대로 '선행을 좀 더 잘하기'이지요. 1987년 생이니 겨우 서른 살의 철학자이며 이타주의 운동가인데 이미 위키피디어의 한 항목이 되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하기를, 

그래서 공무원처럼 편한 길, 어른들이 좋다고 하는 길로만 가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닦길 바랍니다.


'문화가 산책'에서는 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글꼴 디자이너' 안상수 씨의 회고전과, 송파구에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의 무료 음악행사와 전시,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에서 내일부터 3월 말일까지 열리는 

53회 한국보도사진전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 말미에 소개해드린 우리말은 '오래 써서 끝이 닳아 떨어진 물건'을 뜻하는

'모지랑이'였습니다. 누군가를 몹시 그리워하면 가슴이 닳아서 모지랑이가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인양을 지켜보는 희생자 유족들의 가슴도 모지랑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들려드린 음악 명단은 tbs 홈페이지(tbs.seoul.kr)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 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제 글 '청년 동전'을 옮겨둡니다. 


청년 동전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성묫길,

갈수록 멀미가 심해집니다.

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탔다가 반복하며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막내 동생이 걱정스런 얼굴로

십 원짜리 동전을 쥐어줍니다.

동전이 멀미를 막아준다는 설이 있다는 겁니다.

동생의 사랑 덕인지 동전 덕인지 정말 멀미가 나지 않습니다.

 

새삼 동전을 들여다봅니다.

1990년에 나왔으니 스물일곱 살 청년 동전인데요,

제 동생을 거쳐 제게 올 때까지

십 원짜리 동전은 쓸모없다는 소리를 한참 들었겠지요?

 

우리 청년들 중에도 이 동전처럼 능력 발휘할 곳을 찾지 못해

실업자가 된 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동전의 능력을 믿어준

제 동생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청년들에게 일도 시켜 보기 전에 미덥지 않다고 하지 마시고

믿고 맡겨보시지요. 저를 도와준 동전처럼

의외의 능력을 보여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