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떠남, 그리고 날개(2017년 3월 19일)

divicom 2017. 3. 19. 17:34

내일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입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자녀들이 양평 아버지의 유택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나 지금이나 늘 몸이 약해 속을 썩이는 맏딸은 멀미로 인해 도중에 차에서 내려 쉬다가 걷다가 해야 

했습니다. 날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먼지는 많아도 날씨가 온화해, 아버지 앞에 앉으니 예전 아버지의 방에 마주 앉은 것 같았습니다.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는 설 명절에만 드리던 절을 이제는 만나뵐 때마다 드린다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온힘을 다해 사람 

노릇, 아버지 노릇을 하시고 표표히 구름처럼 바람처럼 이승을 떠나셨습니다. 그분의 자녀들 모두 '아버지처럼 

살다가 아버지처럼 떠나자'고 다짐했습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tbs FM95.1MHz)'에서도 '떠남'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근에 자리를 떠난 

대통령과 헌법재판관... 한 사람은 한숨 속에 떠나고 한 사람은 박수 속에 떠났습니다. 있는 자리에서 할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고, 일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떠나지 않으려 하니,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떠날 때의 태도, 떠날 때 받는 대우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는 사람, 아버지처럼 살다가 아버지처럼 표표히 떠나고 싶습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 하는 '영화 읽기' 말미에는 뮤지컬 영화 'Fame'에 나온 아이린 카라(Irene Cara)의 'Out Here on My Own'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의지를 다지게 하는 노래입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도종환 시인의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와 일본 인문학자 사이토 다카시의 <사랑이 필요한 시간>을 읽고 은희 씨의 '사랑해'를 들었습니다.


'문화가 산책'에서는 자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윤석남 선생의 전시회 '마침내 물이 되리라'와, 온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존 버거의 스케치북' 전시회, 한반도 문제 전문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석좌교수의 제 2회 제주 4.3평화상 수상 소식을 전해드리고, 테너 엄정행 씨의'떠나가는 배'를 들었습니다. 무수한 양민이 학살된 4.3사건...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어야겠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우리말은 '민틋하다'였습니다. '울퉁불퉁하지 않고 평평하며 비스듬하다'는 뜻으로 '민틋한 뒷머리,민틋한 바위' 하는 식으로 씁니다. 머리를 짧게 깎으면 민틋한 뒷머리가 파르스름 아름답습니다. 오늘 들려드린 노래의 명단은 'tbs 홈페이지(tbs.seoul.kr)'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 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 드린 제 글을 옮겨둡니다.


날개

 

친구는 멀리 있는 병원에 입원하고

제주엔 유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날개가 있다면 바로 날아갈 텐데... 안타깝습니다.

 

쉰 살이 되던 날 양쪽 겨드랑이가 간질간질하며

날개가 돋는 듯했지만 날개는 돋지 않았습니다.

 

날고 싶은데 날지 못할 때 예술이 태어납니다.

그리운 사람에게 바로 날아갈 수 없으니

편지를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리움과 꿈을 그려냅니다.

사람에게 날개가 있었다면

예술은 현재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가끔은 날개를 갖고 싶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문득, 요절한 천재 이상처럼 외치고 싶습니다.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