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 8개월 만이라고 합니다. 경향신문이 정리한 것을 보면, 최순실 씨(61)의 '국정농단'은 작년 7월26일에 처음 보도됐고, 10월24일엔 JTBC가 최씨 소유의 ‘태블릿PC’에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 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씨는 이튿날 1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최씨에게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검찰은 10월26일 미르·K스포츠 재단과 최씨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고, 27일엔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습니다.
박근혜 씨는 대통령 시절 종종 '수첩공주'로 불렸습니다. 메모가 뛰어난 사람들의 습관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아이들의 메모를 북돋는 부모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수첩을 사용한다고, 메모를 한다고, 무능력한 사람이 능력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첩은 어떤 용도로 쓰는가가 중요합니다. 수첩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욕심은 많지만 기억력은 없는 사람의 욕심을 현실화하는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박근혜 씨의 수첩은 후자에 속할 겁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들 덕에 세상의 질서가 유지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권력을 가질 때 세상은 미세먼지 천지가 됩니다. 5월 9일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에게 투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래에 경향신문의 '수첩공주' 관련 기사를 옮겨둡니다.
수첩공주의 포켓용 수첩을 확보하라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61·구속 기소)와 국정농단을 공모한 혐의의 핵심 증거들이 박 전 대통령의 ‘포켓용 수첩’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첩공주’로 불리는 박 전 대통령은 항상 이 수첩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청와대 참모들에게 지시사항을 불러줬다. 향후 법정 다툼에 대비해서라도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이 수첩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구속 기소)은 지난해 말 검찰 조사에서 재벌 총수들과의 단독 면담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통령이 ‘호주머니 안에 들어가는 조그만 수첩’에 기업 현안을 간략히 메모해서 그 내용을 보고 주로 말했다”고 진술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소속 방모 행정관이 면담 대상으로 지목된 기업과 관련된 자료를 만든 뒤 안 전 수석을 통해 보고하면 박 전 대통령이 핵심만 추려 자신의 ‘포켓용 수첩’에 옮겨적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면담이 끝난 뒤에는 안 전 수석에게 전화를 해 총수들에게 당부한 사항을 알려줬다.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이 미리 지시사항을 수첩에 꼼꼼하게 적어뒀다가 불러주는 것 같았다”며 “종종 ‘받아 적고 있나요’라고 확인도 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국정농단 실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안 전 수석의 ‘업무용 수첩’ 내용이 박 전 대통령의 ‘포켓용 수첩’에도 적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안 전 수석은 자신의 수첩 내용에 대해 “대통령이 불러주는 대로 적은 것으로 나중에 추가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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