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아베 신조와 '앗키드' 사건(2017년 3월 24일)

divicom 2017. 3. 24. 08:37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행보는 거의 항상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의 혈관에 흐르는 군국주의의 피 때문이겠지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한국, 중국, 일본을 순방하며, 일본은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이고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옛 어른들의 말쑴이 떠오릅니다. '일본놈 일어난다, 미국놈 믿지 마라!'는 말씀이지요. 일본인과 미국인 중에도 현재 두 나라의 행보를 비판하며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 '놈'은 '사람'의 옛말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자유칼럼 황경춘 선생님께서 아베 신조의 현재와 앞날에 대한글을 쓰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www.freecolumn.co.kr

아베 총리 다음 승부수는?

2017.03.24

이웃 나라 일본의 회계연도는 4월 1일에 시작됩니다. 국회는 3월 말까지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우리 국회에서는 정부 예산안 통과에는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본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는 예산안 통과를 앞두고, 느긋하게 유럽 4개국 순방을 마치고 22일에 귀국하였습니다.

국회 상하 양원에 압도적 여당계 의석을 가진 아베 총리는, 예산안 통과보다 그 후의 정국 운영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부인이 연루된 어느 사학법인(私學法人)의 비리문제로 내각 지지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국회를 해산하여 현 지지율이나마 유지해야 할 중대한 정치결단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당에 가까운 NTV(일본 텔레비)의 이번 주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 지지도는 한 달 사이 7.3%p가 떨어져 47.6%였고, 1주일 전에 발표된 아사히(朝日)신문 조사에서는 3%p 떨어진 49%였습니다.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아베 지지율이 56%라면서도, 이는 한 달에 10%p가 떨어진 숫자로 2014년 이후 최대 낙폭(落幅)이라 했습니다.

금년 7월에는 도쿄도의회(東京都議會) 선거가 있고, 올 가을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여당 지도부의 만류를 무시하고 독자 출마하여 여당 추천 후보자를 상대로 대승한 전 여당 의원 고이케 유리코(小池白合子) 도지사는 그 후에도 아베 총리에 각을 세우는 일이 자주 있고 인기도 높아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7월의 도의회 선거에 대비해 고이케 지사는 ‘도민 제일’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여당인 자민당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도의회 선거에서 성적이 나쁘면, 다음 총선에서 여당이 고전한 예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당 의원들 가운데서는 아베의 지지도가 더 떨어지기 전에 하원을 조기(早期)에 해산해 도쿄도의희 선거에 앞서 4월에 하원 선거를 치르자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다 합니다. 

이렇게 긴장된 정치 분위기 속에,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관여하던 모리모토학원(森元學園)의 국유지 부정불하 사건이 터졌습니다. 아베 총리의 천적(天敵)이라고 불리는 아사히(朝日)신문의 끈질긴 추적보도로 밝혀진 사건입니다. 

1976년, 당시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를 투옥시킨 유명한 ‘롯키드 사건’(영어 발음식 표기는 록히드)에 빗대어, 일부 인터넷 매체에서는 이번 사태를 ‘앗키드 사건’이라 이름지었습니다. 아키에 여사의 애칭 ‘앗키’를 비웃는 패러디(parody)이며, 국회에서도 한 야당 의원이 ‘앗키드 사건’이라고 언급해 총리를 흥분시켰습니다..

아사히 보도에 이어 다른 매체들도 경쟁적으로 이 문제를 추적, 취재하여 모리모토학원이 국유지를 사정가의 10분의 1 가격에 불하받았다는 비리 외에, 이 학원과 아키에 여사에 관한 많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학원 이사장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씨가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우익 단체 ‘닛폰카이기(日本會議)’의 오사카 지방 간부라는 것; 이 학원이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메이지천황(明治天皇)의 ‘교육칙어(敎育勅語)’를 암송시키고 있다는 것; 유치원 운동회에서 아베 총리를 찬양하는 행진을 했다는 것 등이 국민을 흥분시켰습니다.

전전(戰前) 일본 국수주의의 도덕적 근간이었던 이 ‘교육칙어’는 연합국 점령군의 지시로 전후 각급 학교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패전하기 전, 일본 모든 학교에서 이 ‘교육칙어’는 국민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교육의 경전(經典)이었습니다.

아베 총리가 아키에 여사를 통해 100만엔(약 1천만원)을 학원에 기부했다고 가고이케 이사장이 국회 야당 조사단에 말했으나, 아베 총리는 부인했습니다.  23일 오전 국회 창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가고이케 이사장은 동일한 증언을 했고, 오후에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다시 같은 증언을 했습니다. 아키에 여사는 4월에 개교 예정이었던 이 학원의 소학교 명예교장 직을 사임했습니다. 국유지 부정 불하가 보도되자 이 소학교 설립 허가도 취소되었습니다.

한편 이 학원 이사장과 친분이 있다는 보도를 부인해 오던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장관은 이 학원의 민사소송을 변호인으로 도운 일이 있다는 것과, 작년 10월 국가방위 사업에 협력했다는 사유로 이 학원에 방위성장관 감사장을 수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국회 답변에서 밝혔습니다. 야당은 그녀의 사임을 요구했으나 이나다 장관은 그럴 뜻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내년 12월까지가 임기인 국회 중의원을 정치적 이해타산에서 조기 해산하는 승부수를 던질 것인지, 아베 총리의 다음 움직임에 일본 정계가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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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