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선수가 우리 시각으로 오늘 새벽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 2010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에서 실수를 연발하여 7위에 그쳤다고 합니다. 그녀가 역대 국제무대 쇼트 프로그램에서 기록한 최악의 순위라고 서운해 하는 소리가 높지만 제게는 출전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어떤 일에 전심전력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겠지만, 평생 원하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루었으니 적어도 당분간은 시합에 나가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더구나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이니 그동안 스케이팅에 전념하느라 미뤄두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스케이트화에 이상이 있었다, 발목에 부상이 있었을 거다, 여러가지 추측이 많지만, 무엇보다 실수의 원인은 달라진 마음이었을 겁니다. 김 선수 자신도 경기 후에 부상 때문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었지만 다리가 흔들렸던 것 같다... 나도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회 전 일 주일 정도 제대로 훈련했다며 "사실 지난주까지도 스케이트를 타기 싫어 빈둥거렸는데 내가 가진 게 있어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도 했습니다.
김 선수의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김 선수가 출전한 경기가 텔레비전으로 중계될 때의 시청률은 13.9퍼센트나 되었다고 합니다. 김 선수가 "오늘 일은 잊고" 우리 시각으로 내일 오전에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할 때도 비슷하게 높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들에겐 바로 그 사랑이 식량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독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대중의 바람이 일치할 때는 상관이 없지만 자신의 마음과 대중의 바람이 다를 때,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는 걸 방해하는 게 바로 대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 선수의 인생은 그의 것입니다. 대중이 뭐라 하든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혹은 유지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다고 그 사랑이 영원히 내 곁에 머물지는 않습니다. 내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 건 나뿐입니다. 나 아닌 것, 나 아닌 사람은 누구나 결국 내 곁을 떠나갑니다.
김 선수는 이미 무수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이제 대중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갔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싶으면 타고, 타기 싫으면 타지 말고... 그가 경기에서 기록한 실수는 실수일뿐 실패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에겐 실수는 있어도 실패는 없습니다. 남의 시선을 좇는 인생은 실패이자 낭비입니다. 김 선수가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김연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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