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입적하신 법정스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게 알려지면서 스님의 저작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헌 책이 새 책 정가의 몇 배에 거래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님의 대표작 '무소유'를 15만원에 팔겠다며 인터넷 중고 서점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제가 1980년대 말인가 1990년 대 초에 산 ‘무소유’엔 ‘값1,000원’이라 쓰여 있습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무소유’ 소유전쟁. 웃음이 나옵니다. 스님도 어디쯤에서 ‘허!’ 웃으실 것 같습니다.
출판사 중엔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십시오.”라는 스님의 ‘남기는 말’을 보고도, 정말 절판하라는 건가, 지금 바로 절판하긴 어렵다, 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곳이 있습니다. 문득 1993년 입적하신 성철스님의 유명한 말씀, “산은 산, 물은 물”이 떠오릅니다.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십시오”는 이미 출판되어 나와 있는 책들은 어쩔 수 없지만 더 찍어내진 말라는 말입니다. “산은 산, 물은 물, 절판은 절판”이지요. 가뜩이나 스님의 입적 후 잘 팔리는 책, 스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더 찍어 팔려는 출판인들, 스님의 말씀을 나르기만 했지 제대로 읽거나 들은 적은 없나 봅니다. 성철스님이 하신 또 다른 말씀, “달을 보라는데 손가락은 왜 보나?”도 떠오릅니다. ‘무소유’는 가진 것을 버리라고 하는데 그 책을 가지려고 안달들이니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법정스님이 당신의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고 한 것은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꼭 자기 수준만큼 보고 생각합니다. 3월 13일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에서 거행된 스님의 다비식에서 “스님, 뜨거워요, 일어나 나오세요!”하며 울부짖었다는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책을 소유하는 건 언젠가 읽기 위해서입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으면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전국 각지의 공공도서관마다 ‘무소유’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충청북도 청주시 사직 2동에 있는 충북 중앙도서관에는 네 권이 있고 서울의 정독도서관에는 다섯 권이나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 ‘예약인원 초과’ 상태이거나 ‘대출 불가‘ 상태이지만 스님의 사십구재 후엔 ’무소유‘를 읽으려는 열기도 차차 잦아들 겁니다.
누군가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갖고 있는 ‘무소유’를 버리겠소?” 하고 물을지 모릅니다. 물론 저는 버리지 않을 겁니다. 참 오랜만에 부자가 되었으니 이 기분을 찬찬히 음미하고 싶기도 하고, 젊은 시절 저를 붙들어준 친구이니 내치고 싶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제겐 아직 이 친구가 필요합니다. 오래 전 ‘무소유’를 알아본 제 눈, 꼭 손바닥만 한 그를 집어든 제 손, 그를 소유하고 기뻐했던 제 가난한 소유욕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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