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tbs '즐거운 산책(FM95.1MHz)'에서는 '고추'에 대해 생각해보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을 읽었습니다.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을 기원하며 테너 박세원 씨의 '옛동산에 올라'로 문을 열었고, 러시아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를 생각하며 붉은 군대 합창단이 부르는 '검은 눈동자(Ochi Chornye)'를 들었습니다.
해 지는 광경을 보다 온몸으로 자연의 절규를 느끼고 '절규'라는 그림 네 편을 탄생시킨 에드바르트 뭉크에 대해 얘기한 후에는 U2의 'Twilight'를 들었고, 요즘 극장가를 휩쓰는 형사 영화들에 대해 얘기하고는 Martha Reeves의 'Wild Night'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는, 하는 수 없이 범죄자가 되었던 두 친구를 그린 1991년 영화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에 나왔던 노래입니다.
'고추'는 제 칼럼 '들여다보기'의 소재였는데, 나이 들수록 아름다워지는 고추와 고추를 말리는 할머니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문세 씨의 '슬픔도 지나고 나면'을 들었습니다. 할머니들의 등이 굽은 것, 손등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 -- 기쁨의 소치일까 슬픔의 소치일까 생각해보니 기쁨의 소치인 것 같았습니다. 자녀들, 가족들 먹여살리느라, 거기서 기쁨을 느끼느라 등이 굽고 주름지셨을 테니까요.
'고전 속으로' 에서 릴케의 시 '가을날'을 읽기 전 이동원 씨의 '가을 편지'를 들었고, '오늘의 노래'로는 임수정 씨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걷고 싶은 길' 말미에 들은 남궁옥분 씨의 '아리랑'... 그 여운이 깁니다. 남궁옥분 씨가 이번에 일본인 위안부로 고초를 겪으신 할머니들을 기리는 음반을 냈는데, 이 노래는 그 음반에 수록된 곡으로 남궁옥분 씨가 작곡하고 작사했습니다. 그와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있어 참 감사합니다.
'책방 산책'에서는 김효순 씨의 노작 <조국이 버린 사람들>과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읽었습니다. 김효순 씨는 과거사 진실 규명을 위한 포럼 '진실과 정의'의 공동대표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의 기록'으로 1975년 정부가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조작해냈던 사건들 중 하나를 파헤친 것입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다 옳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꼭 이 책을 읽어보고, 정부는 자신들 만큼 순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길 바랍니다.
<흔자 있는 시간의 힘>의 내용은 한마디로 '무리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입니다. 이 책 덕에 혼자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 원고를 옮겨둡니다. 오늘 들려드린 전곡 명단은 tbs 홈페이지(tbs.seoul.kr) '즐거운 산책' 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추
오래된 단독주택들의 야틈한 담에
세탁소 옷걸이가 즐비합니다.
빨간 고추 화환을 목에 건 하얀 옷걸이들이
큰 공을 세우고 꽃목걸이를 받은
사람들 같습니다.
나이 들수록 예뻐지는 건
고추를 당할 자가 없을 겁니다.
초록 풋고추도 산뜻하지만
빨간 단풍 고추는 꽃보다 어여쁘고
파란 하늘 아래 말갛게 마른 고추는
루비보다 투명하니까요.
고추 화환들의 길이는 얼추 비슷해도
무게와 빛은 다 다릅니다.
새로 걸린 고추들은 무겁고 두껍지만
마를수록 가볍고 투명해집니다.
고추를 만지는 할머니들은 웃고 계셔도
구부러진 허리와 주름진 손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장독대에 내려앉은 하늘에게 물어봅니다.
‘사람도 고추처럼 나이 들수록 가벼워지고 예뻐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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