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프란치스코 교황과 정부, 그리고 기후변화(2015년 7월 1일)

divicom 2015. 7. 1. 09:48

할 일이 첩첩이지만 청와대는 국회와 싸우고 있습니다. 아니 싸우는 게 아니고 혼내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행정부를 귀찮게 할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니 국회의 여당 국회의원들을 대표하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그만두라는 겁니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선출한 원내대표가 청와대 '명령'에 의해 그만두면, 청와대가 국회 위에 있는 것이 되니 유 대표가 그만두면 '삼권분립의 정신'이 훼손되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지만, 대통령은 유 대표의 사직 혹은 축출을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6월 한 달동안 국회에서 처리한 법안은 메르스 관련 법안 겨우 한 건, 이건 국회의 역사에도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수천 만원 씩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사람들이 여의도에 모여 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메르스와 같은 낯선 전염병이 점차 늘어날 테니 그것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뒷걸음질친 남북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고심해야 하고, 날로 심해지는 봄 가뭄과 이른 더위의 원인을 규명하고 대처할 방도를 구해야 합니다.


정부는 지난 6월 11일 네 가지 시나리오 형태로 '2030년 온실가스 감축안'을 발표했지만, 그 안은 '감축안'이 아닌 '증가안'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15~30%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시민단체 환경정의는, 그 감축안은 2005년 기준으로 4~30% 증가시키는 계획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7위 국가로서 기후변화 책임을 다른 국가와 미래세대에 전가하겠다는 부끄러운 안이며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한참 뒤지는 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환경정의는 6월 12일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런 모든 결과의 원인은 온실가스 배출하는 오염당사자인 산업계의 압력에 굴복해 과다 부풀려진 배출전망치를 온실가스 감축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배출전망치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전망 ‘부풀리기’로 온실가스 목표량을 느슨하게 잡을 수 있다는 허점에 대한 우려가 이번 목표안에서 다시 현실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감축을 배출전망치로 삼는 나라는 가봉과 같은 개발도상국이며 이들은 우리나라보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어제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하는 것으로 확정해 발표했는데, 그 중 25.7%는 국내에서 감축하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배출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해결할 거라고 합니다. 산업계는 온실가스를 37%나 감축하면 국내 산업이 다 죽는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경향신문은 국내에서 감축할 25.7%는 정부가 앞서 발표했던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셋째 안에 나온 수치와 같은 것이라고 지적하고, 감축량의 약 3분의 1을 해외에서 배출권리를 사들여 감축하려 하는 정부의 계획이 국제적 비난을 불러일으킬 거라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이 자체 노력 없이 새 기후변화체제에 무임승차하려 한다고 비난받을 거라는 것이지요.


마침 지난 6월 29일 자유칼럼에 김수종 선배가 기후변화와 한국의 대처에 대한 글을 쓰신 것을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8일에 기후변화에 대한 행동을 강력히 촉구하는 회칙을 공표했다고 합니다. 아래에 김 선배의 글을 옮겨둡니다. 글에 나오는 IPCC는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를 줄인 말입니다. 글 말미에 있는 두 문장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런 식의 '자체검열적' 발언이야말로 이 나라의 언론자유 수준을 보여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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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지구를 걱정하다

2015.06.29


오늘은 기후변화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변화’(Change)라는 말은 매우 긍정적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가장 즐겨 쓰는 말이 ‘변화’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라는 단어가 ‘기후’라는 말 뒤에 붙으면 이미지는 확 달라집니다. 기후변화는  부정적인 뜻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은 좀 막연한 걱정거리로 생각되겠지만 10년 뒤 기후변화의 뜻은 재앙 수준의 의미를 갖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후변화에 대한 행동을 강력히 촉구하는 회칙을 공표했습니다. 
교황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회칙의 영문 제목은 ‘Laudato Si, on the Care of Our Common Home’입니다. “찬미를 받으소서,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일에 대하여”에서 ‘우리 공동의 집’이란 바로 지구를 말합니다. 

회칙(回勅:encyclical)은 교황이 전 세계 주교에게 보내는 공식 교서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현실의 사회 및 윤리 문제에 적용하여 해석하고 행동 방안을 제시하는 최 상위 개념의 문서입니다. 주교뿐만 아니라 사실상 12억 가톨릭 신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나 다름없습니다. 

회칙은 어원에서 보듯이 교회 내의 일을 알리는 일종의 회람이었다가 19세기 말 교회 밖의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산업혁명으로 야기된 노동자와 빈곤 문제를 다룬 회칙 ‘새로운 사태’를 공표한 이후 전쟁이나 인종문제 등 시대 변화에 상응하는 회칙이 여러 차례 공표된 적이 있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교황의 회칙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듯합니다. 기후변화 이슈는 진행형인 데다 교황이 갖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문제의 전개 과정은 처음에 과학적 논란을 거쳐 경제와 정치문제로 확산되어 왔습니다. 이제 교황이 환경 이슈를 종교윤리 차원으로 올려놓은 셈입니다. 

1992년 리우 환경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볼 때 기후변화로 신음하는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전 세계적 논의가 시작된 지 23년이 흘렀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구온난화가 화석연료를 쓰는 인간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기후 및 지구 과학자들의 주장을 놓고 과학계에서조차 찬반 논쟁이 불붙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과학계의 주류는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예측을 대변하는 공식 기구가 유엔 산하 IPCC입니다. IPCC는 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혁명 이전을 기준으로 섭씨 2도 이하로 묶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 선을 지키지 못하면 기후변화가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후 이미 거의 1도가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현 추세로 인류가 화석연료를 쓴다면 금세기 말에 지구 기온이 섭씨 4도 이상 상승한다는 예측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지구 생태계의 대혼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 멸종의 서곡이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논의도 일고 있습니다. 마지막 빙하기가 후퇴한 지난 1만 년은 지질학적 연대로 충적세(沖積世)로 불립니다. 기후가 크게 안정되어 인류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화석연료를 과다하게 사용하면서 지구 생태계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로 분류하여 인간세(人間世)로 부릅니다. 인간세는 인류가 흥하는 것이 아니라 망해가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비관적 예측을 하는 학자들은 중생대 공룡이 멸종하듯 인류도 멸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수적인 IPCC의 예측에 의거하더라도 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무지무지하게 해야 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교토의정서 체제를 통해 감축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발전하여 온 자본주의 경제가 화석연료에 너무 중독되어 대안을 찾는 노력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은 화석연료에 의존하여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서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이 30년, 50년 후의 불확실한 재앙을 걱정하기보다 지금 당장 먹고살거나 국가경제를 부강하게 만드는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위기감을 더 느끼는 선진국들이 교토의정서 체제가 끝나는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이 시급해졌고, 개도국들도 기후변화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페루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교토의정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원칙이 합의되었습니다.세계 모든 국가가 올해 9월까지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안을 유엔에 제출하고 오는 12월 파리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대합의를 이룬다는 목표입니다. 특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작년 11월 중국과 감축안에 합의하고 파리 대타협을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공표는 이런 시점에서 나왔습니다. 현실참여적인 성향이 강한 교황은 어쩌면 파리 기후변화 협상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시점에서 회칙을 발표한 것 같습니다. 

교황의 회칙 발표에 비판도 쏟아집니다. 논란은 미국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되는 젭 부시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교황의 회칙을 사회문제를 교회로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비난했습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들이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들은 신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인간에 부여했다는 창세기 해석에 근거하여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는 교황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또한 교황이 회칙에서 자본주의의 탐욕과 기술문명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한 것을 놓고 이를 거북하게 느끼는 지식인들도 많습니다. 기술이 인류문화를 발전시켰고, 환경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기술에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회칙은 파리 당사국 협상을 타결시키는 데 큰 압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캘리포니아의 4년 대가뭄, 남극과 그린랜드 빙하의 대규모 붕괴, 북극해 얼음의 급속한 소멸 등 재앙 수준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회칙이 주는 메시지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거리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얼마전 스스로 공언했던 온실가스 감축 계획보다 훨씬 후퇴한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세계 14위 경제력과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으로서의 의무와 지구환경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빈곤하기 이를데 없어 보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