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친절이라는 무기 (2010년 2월 22일)

divicom 2010. 2. 22. 08:49

제주행 비행기를 타러 간 김포공항, 대한항공 카운터의 여자 직원은 손이 빠를 뿐만 아니라 친절했습니다. 겨우 이, 삼분 간의 대화로 기분이 좋아져 ‘제주에 갈 땐 언제나 대한항공을 타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녀 덕에 오래 전 모 백화점 지하매장에서 만났던 사조참치 직원이 떠올랐습니다. 참치를 사면 두 가지 선물 중 하나를 주겠다며 열심히, 친절하게 회사 홍보를 했습니다.

두 가지 선물은 다 쓸모가 있어 보여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직원에게 두 가지를 다 달라고 했더니, 앞으로 참치는 사조참치만 사겠다고 약속하면 두 가지를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그녀의 친절 때문에 지키기 힘든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 후로 참치를 살 때면 늘 사조참치를 샀습니다. 사조참치가 없어 다른 회사 제품을 살 때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에게 미안했습니다.

출발수속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한쪽엔 스타벅스 카페가 있고 반대쪽엔 상가가 있었습니다.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국인 여행자가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김포공항이 처음 생긴 건 1939년 일본군이 활주로를 건설하면서라고 합니다. 해방 후엔 미국 공군이 사용하다가 1954년이 되어서야 우리나라가 일부 사용하게 되었고, 1958년에 대통령령으로 국제공항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엔 국내선 이용자 중에도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3층 상가만 보아서는 국제공항보다 시외버스터미널 같았습니다.

상가 한쪽 패스트푸드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국 곳곳에 분점을 둔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답지 않게 초라하고 피곤해 보이는 직원들 얼굴엔 웃음이 없었습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는 비정규직일 거라 생각하니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론 홍세화 선생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본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앞에서 오는 아시아인을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맞힐 수 있다는 프랑스 아가씨 얘기입니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걸어오는 사람=일본사람, 무표정으로 느긋한 걸음=중국사람, 화난 얼굴에 급한 걸음=한국인.”

신용카드로 음료수 두 잔을 사고 영수증을 받아 보니 2천여 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장 한쪽에 앉아 상가를 둘러보니 일 년 전과 똑 같아 보였습니다. 동남아사람들로 보이는 외국인 여럿이 패스트푸드점으로 오더니 머리 위의 메뉴를 보며 의논을 했습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패스트푸드점 직원에게 달러로 계산할 수 있느냐고 영어로 물었습니다. 직원은 굳은 얼굴을 바꾸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Change”라고 대꾸했습니다. 질문했던 사람이 불쾌한 얼굴로 일행에게 “아래층에 가서 바꿔 오래” 하며 몸을 돌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그들을 돕지 못한 게 내내 미안하고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국제공항에 있는 식당에서 왜 달러를 받지 않을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달러를 받지 않는 거라면 미안해해야 하지 않을까, 달러는 받지 않아도 신용카드는 받는다고 말해줄 순 없었을까? 국제공항에서 일하려면 최소한의 영어와 예절 교육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짧은 제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김포공항역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할 때 외국인 한 사람이 역무원에게 김포공항으로 가려면 얼마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역이 하도 크니 무언가를 타야 공항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나 봅니다. 역무원은 웃긴다는 듯이 하늘을 손가락질하며 “Go up”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위로 올라가면 공항에 갈 수 있다는 뜻이었겠지만 돌아서는 외국인의 얼굴엔 불쾌감이 역력했습니다.

어쩌면 패스트푸드점의 직원과 역무원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를 겁니다. 달러를 우리 돈으로 바꿔오라고 “Change”라고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라고 “Go up”이라고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 겁니다. 자신들의 태도와 말투가 얼마나 무례했는지도 모르겠지요. 제주를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그 짧은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목격한 불친절은 잊히지 않습니다. 직접 겪은 외국인들은 훨씬 더 오래 그때의 불쾌감을 기억할 겁니다.

정부는 2008년 10월에 대통령부인을 명예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올해부터 2012년까지를 ‘한국방문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현재 780만 명에 머무르고 있는 외래 방문객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한 특별행사”로 ‘한국방문의 해’를 지정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대형이벤트 상호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 극대화,” “관광산업 재정비를 통한 관광한국의 관광 경쟁력 강화” 등 거창한 목표도 나와 있습니다.

대형이벤트를 열고 관광산업을 재정비하면 손님이 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번 다녀가는 손님만으로 ‘관광한국’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다녀간 사람의 가슴속 추억의 일부가 되어 다시 오고 싶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가보라고 추천하게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을 이루는 가장 큰 무기는 친절입니다. “인생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는 친절, 둘째도 친절, 셋째도 친절이다”라는 말은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가 19세기에 한 말이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김포공항은 작년 말 국내 15개 공항에서 실시한 미세먼지농도 조사에서 가장 먼지가 많은 공항으로 밝혀졌지만, 올해부터 2013년까지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이루어지고 나면 공기가 크게 개선될 거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국방문의 해’를 선포하기 전에 김포공항 리모델링을 했어야 하지만 정부가 큰 뜻을 갖고 하는 일에는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다행인 건 건물을 리모델링하려면 몇 달에서 몇 년씩 시간이 걸리지만 마음은 1초 만에도 리모델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부디 김포공항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이 마음을 리모델링하여 친절해지시길,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 한 자리를 차지하시고 ‘한국방문의 해’에도 기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