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꼭 삼년 만에 하직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시사(時事)를 떠나 살고 싶다는 것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신문을 열심히 챙겨 보느라 피로했던 눈과 마음에 시사 너머를 볼 시간을 주고 싶습니다. 2007년 3월부터 지금까지 저와 ‘동행’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작년 10월 28일자 한국일보의
‘김흥숙 칼럼’에 실렸던 글, ‘칼럼이라는 것’으로 인사에 대신합니다. 자유칼럼 역사상 다른 매체에 실렸던 글을 다시 전재하기는 처음입니다. 이 글의 재전재를 허락해주신 자유칼럼 공동대표님들과 한국일보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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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뵈었으나 여전하시어 기뻤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골프를 치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산에 오르신다니 꾸준한 운동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적지 않은 퇴직금과 연금, 선생님의 직업을 이어 받은 자제분들 두루 부럽고, 비싼 저녁을 사주시며 제 글에 배인 ‘분노’를 염려하실 때는 송구스러웠습니다.
“전엔 따뜻하고 서정적인 글을 쓰지 않았나? 그 글들, 좋던데… 아무튼 열심히 써요.” 뭐라고 한 말씀 드리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물들기 전에 떨어진 잎사귀들이 제법 차가운 바람을 타고 거리를 휘돌았습니다. 힘겹게 어둠을 이고 선 작은 가게들, 피로에 젖은 채 하루를 정리하는 얼굴들, 윤기 흐를 제 얼굴이 부끄러웠습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각에도 이 나라와 세계 안팎에선 무수한 일들이 일어나고, 수없이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집니다. 그 많은 일들과 사람들 가운데 무엇에 대해, 누구에 대해 쓸 것인가를 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글의 종류는 사람의 종류만큼 많습니다. 어떤 이의 글은 지식과 성취로 넘치고, 어떤 이는 가르치려 하고, 어떤 이는 일어나 싸우자고 합니다.
자랑할 지식도, 나아가 싸울 용기도 없는 제가 칼럼을 쓰는 이유는 희망 때문입니다. 배부른 사람과 배고픈 사람을 잇는 다리를 하나 놓았으면, 배부른 사람과 배고픈 사람이 만나 함께 ‘적당히 배부른’ 상태를 도모하도록 도왔으면 하는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제 칼럼에서 읽어내신 분노는 투쟁이나 파괴를 부르는 성냄이 아니라, 의당 누려야 할 기본적 조건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절망적 상황, 희망을 밀어내는 상황에 대한 분노입니다. 오래 전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공분(公憤)이지요. 모두가 갖고 태어났으나 잠시 잊고 있는 양심과 사랑을 끌어내어, 함께 희망과 대안을 찾기 위한 마중물입니다.
지난 주 서울에서는 진보적 시민운동을 이끌어온 시민단체 인사들이 모여 ‘희망과 대안’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공감대 위에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대안정치세력을 육성한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5개 기둥 중 하나로서 행정, 입법, 사법부와 언론을 감시, 견제해야 할 시민단체들이 직접 정치활동에 나서게 된 것도 슬픈데, 더 마음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소속 노인 수십 명이 애국가와 태극기 없이 하는 행사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치며 회의를 방해한 겁니다. 홈페이지에 “노구의 몸으로… 자유대한을 지키고자” 나섰다고 쓰여 있는 걸 보니 노인들의 단체입니다. 이달 초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지를 이장하라며 시위하기도 했습니다.
어버이다운 어버이이든 아니든, 연세 드신 분들이 한가로이 여생을 즐기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엔 노인이 너무 많고 노인으로 살아야 할 시간이 너무 깁니다. 지난 7월 1일 현재 우리나라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를 넘었고, 2016년엔 노인인구가 14세 이하 인구를 추월하게 된다고 합니다.
골프도 좋고 등산도 좋지만 건강만을 목표로 삼는 노인은 존경받지 못합니다. 부디 선생님의 건강과 장수(長壽)가 젊은이들에게도 기쁨과 영감(靈感)을 주기 바랍니다. 물들기 전에 떨어진 잎사귀처럼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갑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을 보며 배우고 싶습니다. 노년은 젊을 때 실천하지 못했던 정의를 행동에 옮기는 시기라는 것, 두려움 없이 희망과 대안을 키우는 거름이 되는 때라는 것.
언젠가 소박한 백반을 대접하며, 오래 전 선생님이 사주신 브레히트 시집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아까 드리지 못한 답변 대신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가 실려 있는 107쪽에 은행잎 하나 꽂아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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