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셰일혁명과 조지 미첼(2014년 11월 14일)

divicom 2014. 11. 14. 09:22

미래의 에너지로 불리는 셰일가스... 언론에는 오르내리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침 제가 존경하는 김수종 선배가 자유칼럼에 셰일가스 얘기를 쓰셨기에 여기 옮겨둡니다. 


위키백과의 '셰일가스' 항목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셰일가스(Shale gas)는 진흙이 수평으로 퇴적하여 굳어진 암석층(혈암, shale)에 함유된 천연 가스이다. 넓은 지역에 걸쳐 연속적인 형태로 분포되어 있고 추출이 어렵다는 기술적 문제를 안고 있었으나, 1998년 그리스계 미국인 채굴업자 조지 미첼이 프래킹(fracking, 수압파쇄) 공법을 통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는 모래와 화학 첨가물을 섞은 물을 시추관을 통해 지하 2~4 km 밑의 바위에 5백~1천 기압으로 분사, 바위 속에 갇혀 있던 천연가스가 바위 틈새로 모이면 장비를 이용해 이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확인된 매장량은 187조 5000억 ㎥로 이는 전 세계가 60년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열량으로 환산하면 1687억 TOE(Tonnage of Oil Equivalent, 연료간 비교를 위해 석유 기준으로 환산한 단위)로 석유매장량(1888억 TOE)과 비슷하다. 채굴 중 새어나가는 셰일가스에 의해 지구온난화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경계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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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이야기 두 번째

2014.11.12


지난 칼럼에 이어서 석유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미국의 '셰일혁명'이 석유 값을 떨어뜨리면서 세계의 에너지 판도는 물론 국제정치 구도까지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늘의 화제는 셰일혁명을 격발시킨 인물, 조지 미첼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미치도록 꿈을 꾸는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 갑니다. 1919년에 출생한 그는 작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평생을 석유와 가스 개발에 미쳐 살았던 인물입니다. 

조지 미첼의 아버지는 그리스에서 염소 목동으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였습니다. 뉴욕에서 떠돌다가 끝내 정착한 곳이 텍사스 주의 항구 도시이자 유전 지대인 갤버스턴이었는데, 그곳이 훗날 아들 조지 미첼이 셰일혁명을 일으킨 무대가 됩니다. 


아버지는 구두닦이밖에 할 일이 없어 지독히 가난하게 살았지만, 아들은 땅속의 암석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어 죽을 때 20억 달러(약 2조 원)이상의 유산을 남긴 억만장자가 됩니다. 

조지 미첼은 텍사스 A&M대학에 입학한 후 학생들에게 캔디와 잡화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하는 고학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졸업할 때 석유공학과의 과 수석이었고, 텍사스 청년답게 석유개발의 꿈을 꾸었습니다. 

2차 대전 때 4년간 미국 공병대에 근무한 조지 미첼은 제대하자 석유회사 취직을 마다하고 휴스턴에 조그만 독립 사무실을 마련하여 '미첼 에너지'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그는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나섰고, 가스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텍사스의 천연가스 자원이 급속히 고갈되면서 그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큰 석유 회사들은 해외 유전 개발에 눈을 돌려 살길을 찾았지만 조지 미첼은 텍사스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를 텍사스에 묶어 둔 것은 1982년 입수한 한 편의 지질 보고서였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텍사스 땅 밑 깊은 곳에 광범한 셰일 암석층이 분포하고 있으며 그 암석 속에 석유와 가스가 함유되어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셰일층(shale formations)은 지질시대에 형성된 진흙 퇴적층으로, 이 지층에 석유와 가스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뽑아낼 혁신적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석유와 가스 업자들은 시험 시추를 하다가 관심을 끊어버린 그야말로 쓸모없는 돌덩이였습니다. 

이미 환갑을 넘었지만 조지 미첼은 1980년 대 초 지하 1,000미터 이상 되는 깊이에 묻혀 있는 이 암석층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추출하겠다고 도전했습니다. 

전통적인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은 지표면에서 수직으로 시추공을 뚫어 지하의 배사(背斜)구조 위에 고여 있는 석유와 가스를 퍼내면 됩니다. 그러나 셰일 석유나 셰일 가스를 추출하려면 수직으로 시추공을 뚫고 1천 미터 이상 들어가다 셰일 암벽 층을 만나면 그때 수평으로 굴착하며 암벽을 부숴 내어 석유와 가스가 모이게끔 통로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즉 수평시추공법(horizontal drilling)과 수압파쇄공법(fracking)을 융합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물, 모래, 화학약품을 정교히 배합하여 고압으로 쏘아 암벽을 깨부수는 수압파쇄공법이 성공의 열쇠였습니다. 

미첼은 회사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수압파쇄공법 혁신에 나섰습니다. 1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시추공을 뚫었지만 실망스런 결과만 나왔고, 셰일 가스 개발에 나섰던 많은 회사들이 거의 사무실 문을 닫았습니다. 회사의 이사회, 전문가, 심지어 믿고 맡긴 지질학자마저 미첼에게 “돈을 낭비하는 짓”이라며 중단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미첼은 “이 길밖에 없다.”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거의 20년의 천신만고 끝에 그가 개발한 시추기술로 뚫은 구멍에서 천연가스가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나이 80세를 바로 앞둔 1998년이었습니다.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무리한 투자로 그는 투자 여력을 잃었습니다. 그는 35억 달러를 받고 회사를 매각한 후, 합병된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습니다. 미첼의 기술혁신은 세계 에너지 시장 판도를 뒤흔들었고, 미국이 21세기 에너지 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미국은 기술 개발과 기업가 정신에서 볼 때 복도 많은 나라입니다. 석유 산업의 존 록펠러, 강철 산업의 앤드루 카네기, 전기 산업의 토마스 에디슨, 자동차 산업의 헨리 포드, 철도산업의 니콜리어스 반더빌트 등이 끊임없이 미국의 산업을 혁신해 왔습니다. 

1980년대 들어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산업 국가로서 미국의 위상이 급속히 녹슬어 갈 때,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같은 벤처 기업가들이 실리콘밸리의 IT 혁명으로 산업의 주도권을 다시 잡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작년 7월 미첼이 세상을 떴을 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잡지는 조지 미첼을 록펠러나 포드같이 미국 산업의 흐름을 바꾼 혁신적 기업가로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글을 게재했습니다. 
“텍사스 진흙에 구멍을 뚫고 일으킨 미첼의 셰일혁명은 실리콘밸리에서 생성되는 컴퓨터 알고리즘만큼이나 확실하게 세계를 바꾸어 놓고 있다.”


조지 미첼이 일생 동안 뚫은 시추공의 숫자가 1만 개라고 합니다. 성공확률보다 실패확률이 훨씬 높다는 이 바닥에서 조지 미첼이 뚫은 그 많은 시추공은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하나하나가 꿈, 땀, 절망, 돈, 끈기의 결정체입니다. 

최근 한국 대기업들이 직면한 곤경과 비교해 보면서 미첼의 셰일혁명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1년 전만 해도 삼성 스마트폰이 애플 제품을 박살낼 것처럼 한국 언론이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주력 산업은 고전하고 있습니다. 창의적 기업가 정신과 혁신적 기술 개발이 아직 요원한 과제란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뉴스에는 '대란'(大亂)이라는 말이 난무합니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혁명'(revolution)이란 용어가 수시로 생겨납니다. PC혁명, 인터넷 혁명, 디지털 혁명, 스마트폰 혁명, 그리고 셰일혁명이 나왔습니다. 모두가 긍정적이고 전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들입니다. 특히 셰일혁명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옛날의 산업을 부흥시킨 사례로서 인상적입니다. 

한국에도 대란의 주역이 아니라 혁명의 주역이 되는 개척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